심상태 몬시뇰 "10여년 '신경편람' 번역…그새 거북이 등 됐죠"

입력 2017-03-23 18:04
심상태 몬시뇰 "10여년 '신경편람' 번역…그새 거북이 등 됐죠"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거북이걸음으로 10여 년을 번역에 매달리다 보니 사람들이 실제로 저를 보고 '거북이 등'이 됐다고 해요." (웃음)

수원가톨릭대 명예교수인 심상태 몬시뇰은 23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열린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이하 '신경 편람')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했던 번역과정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신경 편람'은 초기 교회부터 전승돼온 신앙고백문, 교황·공의회·교황청의 중요 문헌들을 해제와 함께 엮은 신앙 규정집이다. 독일의 신학자 하인리히 덴칭거(1819∼1883)가 1854년 초판을 펴냈기에 흔히 '덴칭거'로도 불린다.

이 책의 공동 번역자 중 한 명인 황치헌 신부는 '신경 편람'에 대해 "1800년대 덴칭거가 살았던 당시 독일에서는 로마 교황청과는 다른 신학적 노선이 존재했다"며 "덴칭거는 교황으로부터 단죄된 명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 책을 묶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심 몬시뇰은 이어 "신경 편람에는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인 사도 신경부터 고대·중세·근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공식적인 교의 그리고 윤리와 관련된 가르침이 총망라돼있다"고 소개했다.

분량만도 1천728쪽에 달하는 한국어판이 나오기까지는 무려 14년이 걸렸다. 이성효 주교(수원교구 보좌주교), 심상태 몬시뇰, 곽진상·황치헌·박현창·박찬호 신부(이상 수원가톨릭대 교수) 등은 2003년 '덴칭거 책임번역위원회'를 꾸려 번역에 착수했다.

2세기부터 2009년까지 발표된 650여 편의 문헌들을 우리말로 옮겨 2015년 번역본을 탈고했으며 이후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의 감수와 편집 작업을 거쳐 한국어판이 완성됐다.

역자들은 2003∼2010년 영어·독일어판 등을 토대로 1차 번역을 완료했으며, 2010∼2015년 1차 번역본을 라틴어 원본과 비교하며 재번역 작업을 거쳤다.

특히 신학 전문 용어의 번역과 이를 통일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역자들은 입을 모았다.

곽진상 신부는 "신학 전문 서적이기 때문에 쉬운 우리말로 옮기면서도 최대한 원문의 뉘앙스에 충실해야만 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또 심 몬시뇰은 "10년 넘게 번역을 하다 보니 시력이 나빠져 이제는 작은 글씨는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길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심 몬시뇰은 번역 작업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털어놓았다.



심 몬시뇰은 "처음 번역을 하자고 황 신부로부터 제안이 왔을 때 무모하게 느껴졌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보다 교세가 작은 중국과 일본도 자국어판을 보유하고 있는데 한국교회가 아직 한국어판을 보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번역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현재 '신경 편람'은 독일어 대역본을 비롯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헝가리어, 크로아티아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판이 발행돼 있다. 한국어판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자들은 '신경 편람'의 흥미로운 대목도 소개했다.

박현창 신부는 1241년 노르웨이 교구 대주교가 보낸 편지에 대한 로마 교황청의 회신을 꼽았다.

가뭄으로 극심한 물 부족을 겪던 당시 노르웨이 가톨릭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물 대신 맥주로 세례를 주는 일이 생겼고 노르웨이 대주교는 이것이 용인받을 수 있는 일인지를 로마 교황청에 물었다.

이에 대해 당시 교황청은 원칙적 입장을 강조하며 물 아닌 다른 것으로 세례를 주지 말라고 답했다고 박 신부는 전했다.

박찬호 신부는 또 "이를테면 '고리대금이 정당한가'라는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교리가 시대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며 "교리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성효 주교는 "이번에 완역된 '신경 편람'이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한 한국 신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경 편람' 출간을 맞아 오는 5월 10∼11일 수원가톨릭대에서는 '덴칭거와 오늘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신경 편람'의 역사적 의미와 신학적 가치를 분석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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