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리도서전 초청작가 슬리마니 "이야기는 자유다"
'달콤한 노래' 작년 佛 최고권위 공쿠르상 수상…올가을 한국에도 번역출간
"한국 작가 작품 아직 못 읽어봐…한강의 '채식주의자' 꼭 읽어보겠다"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의 여류작가 레일라 슬리마니(35)는 아직 몇 개의 작품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두 번째 내놓은 소설 '달콤한 노래'(가제. 원제 'Chanson Douce')로 작년 프랑스 최고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Prix Goncourt)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신진작가에게 수여되는 공쿠르상은 프랑스의 4대 문학상 중 하나로, 상금은 만원 남짓한 10유로에 불과하지만, 수상작은 즉시 불어권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해 작가에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준다.
모로코에서 태어나고 자라 성인이 다 될 무렵 프랑스로 이주해 고등교육을 받고 프랑스 문단에서 활동 중인 그는 육아, 여성, 이슬람 문화, 전통과 현대 등의 주제에 관해 예리한 안목을 보여주는 소설과 에세이로 현대 불문학에 문화적 다양성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기가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달콤한 노래'는 프랑스의 교양있는 중년 부인 루이즈가 파리의 한 젊은 중산층 부부의 유모로 들어가면서 생기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스릴러 요소를 가미해 다룬 작품이다. 현대 가정의 육아, 부부관계, 성 역할, 폭력 등의 문제를 명징한 문체와 섬세한 심리묘사로 다뤄 호평을 받고 있다.
모로코와 프랑스 이중국적을 가진 슬리마니는 오는 24∼27일 열리는 파리 국제도서전(주빈국 모로코)의 초청작가로, 프랑스 정부는 23일(현지시간) 그에게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수여할 예정이다.
공쿠르상 수상작 '달콤한 노래'를 올가을 한국에 번역 출간 예정인 그를 지난 21일 파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여성·이민자로서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들어봤다. 슬리마니는 '달콤한 노래'의 한국 출간(북이십일 아르테)에 맞춰 방한할 예정이다.
다음은 작가와의 문답.
--'달콤한 노래'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를 연상시키는데 카뮈도 알제리 태생 프랑스인으로 평생 두 나라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했고 이는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작가도 모로코 출신 프랑스인인데 이런 배경이 작품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프랑스어는 내 첫 번째 정체성이다. 모로코에서도 프랑스계 학교를 다녔다. 아랍어를 배우긴 했지만, 모국어는 프랑스어다. 어려서부터 무슬림이나 모로코인으로 교육받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입고 행동하는 것 모두 내 정체성은 내가 선택적으로 만들어 갔다. 보편적인 가치 세계인들에게 통하는 가치다. 문학은 그 보편적인 가치를 나누는 행위로, 어느 나라와 민족에 속해 있건 문학을 매개로 다른 문화와 소통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달콤한 노래'라는 제목을 어떻게 짓게 됐나. 제목과 소설 내용이 상반되게 읽히는데.
▲ 프랑스 가수 앙리 살바도르의 곡 '윈 샹송 두스'(Une Chanson Douce)에서 따왔다. 프랑스인이라면 대부분 잘 아는 아름다운 노래다. 그래서 제목으로 택했다. 독자에게 모성애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면서 이를 배반하게 하는…
중심인물인 유모 '루이즈' 역시 친절한 이미지를 가졌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다. 이 소설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지만 결국 비극이다. 그런 반전을 노렸다.
--뉴욕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알고 있다. 어떤 점이 소설화를 결심하게 했나.
▲ 공포의 보편성이다. 이 사건을 접하기 전에도 유모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 엄마, 유모, 아이의 상호 관계가 흥미로웠다. 유모와 아이의 애착 관계, 그걸 보는 엄마의 감정, 또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 대해 유모가 느끼는 것까지.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다루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이 사건을 접했고 모든 엄마의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아이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 '섹스와 거짓말'이라는 작품으로 9월 출간된다. 모로코 여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얘기다. 이슬람 문화 속에서의 성적인 주제, 특히 모로코 여성의 성 정체성이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인간이 가진 양면성을 말하는 작품이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관심 덕분인지 벌써 15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만화 버전도 함께 출간된다.
--에세이나 소설에서 이슬람 문화와 여성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본인은 무슬림인가.
▲ 종교는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영역이다. 개인적으로 내 종교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살았던 곳은 이슬람 국가였지만.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답변을 못 하는 것을 이해해달라.
--프랑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청년들이 테러범으로 변모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서 질문해봤다. 이슬람 사회를 다뤄본 작가로서 이런 문제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 내 작품으로 사회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역할은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슬람국가 출신이라고 해서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진 않는다. 문학이 교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나도 그 질문에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작가의 표현의 자유다. 이 자유를 보호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소설가는 사회문제에 대해 아는 것처럼 행동하기보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공쿠르라는 프랑스 최고권위의 문학상을 받았는데 수상 이후 삶이 바뀌었나.
▲ 문학을 하는 동료들의 인정이다. 내가 하는 일이 신뢰받고 있다고 느끼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나의 내 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했다고 할까. 또, 고상한 주제가 아니지만, 여성의 이야기를 문학의 주제로 가치 있게 봐줬다는 점에서 이 상은 큰 의미가 있다.
--소설 쓸 때 가장 중요시하는 점은.
▲ 지루할 수 있는 일상과 보편적인 주제를 간결하면서도 새로운 형식으로 구체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전달한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이 자신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소설가가 되려면 어떤 덕목이 가장 중요한가. 한국의 소설가 지망생에게 조언해준다면.
▲ 두려워하지 마라.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지 독자가 어떻게 생각할지 미리 생각하지 마라. 아무도 자신의 작품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라. 누군가를 글로 유혹하고 자신의 글이 매력적이게 보이려 하지 말고, 다만 열정을 갖고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써라.(슬리마니는 이 대목에서 '열심히'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좋아하는 작가는.
▲ 윌리엄 포크너,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카뮈,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필립 로스, 마르케스, 가오싱젠 등이다.
―한국 작품은 안 읽어봤나.
▲ 아직.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 있으면 말해달라. (함께 있던 한국 측 출판사 관계자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추천했더니 슬리마니는 스마트폰을 꺼내 재빨리 검색을 해보곤 "꼭 읽어보겠다"고 답했다.)
--왜 소설을 쓰는가.
▲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행복하다. 프랑스어가 좋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좋다. 이야기는 곧 자유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규정들을 초월하고 어떤 제약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 자유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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