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전자기기 기내 반입금지에 전문가들 "황당하다" 비판

입력 2017-03-22 11:34
美·英 전자기기 기내 반입금지에 전문가들 "황당하다" 비판

"비과학적·비논리적"…법원 제동 우회하려는 反이슬람 조치 의심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미국과 영국이 이슬람권 국가에서 오는 항공편에 대해 랩톱과 태블릿, 게임기 등 '일정 크기 이상의' 전자기기 기내 반입을 갑자기 금지하자 보안 및 대레러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2일 AP통신과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기본적인 컴퓨터 과학에 어긋나는 비논리적 조치라며 배경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교통안전청(TSA)이 지난 20일 갑자기 이런 지침을 조용히 발령한 지 몇 시간 뒤 도널드 트럼프 정부 고위 관리들은 야간에 급하게 기자회견을 열어 테러리스트들이 다양한 소비제품 속에 폭발장치를 숨겨 민간항공기를 노리는 일이 증가한다는 정보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안보부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오는 항공편에 대한 이번 지침이 테러 예방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민간 전문가들은 이에 회의적이다.

기내에 반입하는 랩톱 컴퓨터가 폭발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하지만 이를 화물칸에 실어도 마찬가지이며, 스마트폰도 위험성은 같은데 이번에 금지하지 않은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버클리) 국제컴퓨터과학연구소의 니콜러스 위버 연구원도 이같이 지적하면서 "이번 조치는 기존 위협 모델과도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괴하다"고 말했다.

보안기술 전문가인 브루스 슈나이더는 이번 조치를 "여행하기를 매우 어렵게 하는 규제"라고 밝혔다.

그는 기술 측면에서 보면 지난 10여 년 사이에 변한 게 전혀 없는데도 이런 위협을 오늘 갑자기 더 심각한 위협으로 취급하고 극소수 중동국가 항공편에만 적용해야 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토안보부 고위 관료 출신인 미국 컨설팅사 처토프그룹의 버닛 워터스는 민간항공기를 겨냥한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은 9.11 이전부터 계속 진화돼 왔으며 자신이 정부에 있을 때에도 "매우 분명하고, 한결같이 계속돼 온 일"이라며 새삼스러운 조치에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UC버클리 법학대학원 폴 슈워츠 교수는 9.11테러 당시 항공기 납치범들이 독일 함부르크에 세포조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테러범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조직을 운영하는 일종의 '무국가 시스템'인데다 아무 지역에서나 미국행 항공편을 탈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동 지역 몇몇 나라만 규제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테러대책이라는 것이다.

같은 학교 크리스 후프네이글 교수는 공항에서 랩톱 등 기기 반입 여부 점검 등을 하느라 많은 시간과 불편함을 초래해 광범위한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최근 중동지역 항공 수요 증가를 선점하려는 미국 항공사들이 이런 불편을 무기로 삼아 막대한 로비력을 정부에 행사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이슬람국가 여권 소지자의 미국 여행을 금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법원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리자 이 같은 '묘수'를 무리하게 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카타르 도하 캠퍼스의 바누 악데니질 교수는 내달 초 미국에서 열리는 회의의 사회자이자 발표자인데 랩톱 없이 17시간 여행하면 기내에서 회의 준비를 할 수 없고, 소중한 자료들이 든 랩톱을 분실할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면서 이번 금지 조치 배후의 동기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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