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석의 동행] 젊은이들을 꿈꾸게 하자
(서울=연합뉴스) "나의 수석 합격 소식을 불우했던 과거와 연결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출세를 할 수 있다' 식의 미담으로 다뤘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후임에 지명된 이선애(50) 헌재 재판관 후보자가 1989년 사법고시에 수석 합격한 후 그해 11월 한 일간지에 보냈다는 독자투고 내용의 일부다. 이 후보자는 이 글에서 "이런 미담이 사회에 확산할수록 사회의 빈부 격차나 소외계층 문제와 같은 구조적인 성격의 문제를 개인적 노력의 문제로 환원해 버릴 수 있다"고 했다. 사시 수석 합격과 출신 배경을 연결하는 언론의 상업주의적 보도 형태를 비판한 것이다. 20대의 감성이 묻어나는 당찬 지적이다.
세월이 28년 흘러 이달 6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 후보자를 지명했을 때도 일부 언론의 보도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 '노점상 부모와 셋방 살며 사시 수석', '노점상 집 소녀 가장 헌재 재판관 됐다', '의류 노점 하던 부모 아래서 성장' 등의 기사 제목을 달았다. 대법원의 친절한 보도자료가 한몫했다. 이 후보자를 '역경을 극복한 희망의 상징'이라며 "학창시절 친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의류노점을 하는 의붓아버지와 어머니 슬하에서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하며 어렵게 생활했음에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학업에 정진해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소개했다. 헌재 재판관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적임자임을 부각하고 싶은 대법원의 속내가 읽힌다. 이 후보자 입장에서는 세월이 흘러도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변한 게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이제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로 변했다. 이 후보자와 같은 미담이 나오기 어려워졌다. 교육이 더는 계층이동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못 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사회계층 구조가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이달 14일 발표한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수준별 교육비 격차가 더 벌어졌다. 소득 최상위(월평균 700만 원 이상) 가구와 최하위(100만 원 미만)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 격차가 2015년 6.4배에서 지난해 8.8배로 더 커졌다. 최근 심화한 소득 양극화로 저소득층이 교육비 투자를 줄인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사교육비의 차이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낳는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대학 생활이 확연히 다르다.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해 졸업해도 학자금 상환에 시달리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생이 있다. 가정 형편에 따라 공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달라지는 것이다. 공부 시간에 따라 학점도 차이가 나고, 학점이 좋은 학생은 고소득 일자리를 얻을 확률이 높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교육격차가 노동시장에서 지위 격차로 이어져, 부모와 자녀 간의 대물림 구조가 되기 쉽다.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 사회계층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타고난 가정환경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 젊은이들은 꿈을 꾸지 않을 것이다. 모바일 게임업체 넷마블의 창업주 방준혁과 같은 '성공 스토리'가 더는 나올 수 없다. 방 씨는 가정 형편 탓에 고교를 중퇴했지만 잇단 실패에 굴하지 않는 도전 끝에 'IT 최고 부자'에 등극하는 인생 역전 드라마를 일궜다.
이선애 후보자도 28년 전 독자투고에서 "출세를 위해 사법시험을 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 즉 민주화나 통일문제, 소외계층의 문제를 해결하여 더 건강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라고 썼다. 그 시절엔 그런 꿈을 꿀 수 있었다. 꿈이 있었기에 사시 수석을 했고, 헌재 재판관 자리까지 목전에 두고 있다. 어릴 때 가난하게 자랐다고 해서 나중에 반드시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젊은 시절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탄핵심판 결정을 보고 헌재 재판관의 위상을 새삼 실감한 터라 더더욱 그렇다.
일할 능력은 있지만 그냥 일하지 않고 쉰 청년 인구가 지난달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숫자가 36만2천 명이나 된다. 높디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꿈조차 포기한 건 아니길 바란다. <논설위원>
bond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