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원조극우 르펜, 딸 佛대선 선전에 "이미 승리"
마린 르펜을 후계자로 보며 "내가 옳았다" 자찬
트럼프 동경…"내가 딸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선거운동"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손꼽히는 마린 르펜(48) 국민전선(FN) 대표의 아버지이자 FN을 창립한 장 마리 르펜(88) FN 명예총재가 딸의 선전에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이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2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인근 몽트루트 자택에서 WP와 만난 르펜 총재는 딸의 선전을 두고 "마침내 여론은 우리가 극단주의자들의 사상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순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평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제 사람들은 '르펜이 옳았다'고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르펜 총재는 최근 유럽에 불어닥친 극우주의 열풍의 근간에 있는, '원조 극우'격 인물이다.
그가 1972년 창당한 FN은 2011년 딸 마린 르펜 대표가 물려받아 이끌어가고 있다. 한때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표방한 이 정당을 대중 정당으로 변신시키려는 노력 끝에 딸인 르펜 대표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대선에서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아버지 르펜 총재는 정당 활동을 하며 숱한 막말로 구설에 올랐다. 1987년 한 인터뷰에서 독일 나치 정권하에 유대인 대량 학살을 위해 가동된 가스실을 "세계 2차대전 역사의 사소한 부분"이라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1996년에도 독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서 "세계 2차대전에 관한 1천쪽 짜리 책이 있다면 강제수용소에 관한 부분은 고작 2쪽에 불과하고, 가스실에 관한 내용은 그중에서도 10~15줄 분량밖에 안 된다. 사소한 부분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본인의 주장을 재차 펼쳤다.
그는 이 같은 발언으로 프랑스 법원에서 유죄판결도 받았다.
그는 이런 막말에도 극우 지지층의 결집력을 바탕으로 2002년 대선 결선 투표까지 올랐다. 그러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과 맞붙은 결선에서 르펜 총재는 17.7%의 득표율을 올리는 것으로 끝났다.
르펜 총재는 WP와 인터뷰에서도 가스실을 "사소한 부분"이라고 한 발언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자신을 겨냥한 대중의 격분을 조롱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르펜 총재의 발언이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정교한 계산이 숨어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에모리 대학 역사학자인 데버러 립스태트는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의미를 완전히 알고 있다"며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거짓말을 한 뒤 그 거짓말을 견해처럼 포장해 논쟁거리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립스태트는 그러나 "객관적 사실이라는 게 있다. 모든 문제가 토론 대상일 수는 없다. 이건 반유대주의"라고 잘라 말했다.
르펜 총재는 몇 년 전 딸 르펜 대표와 당권 싸움을 벌인 끝에 갈라섰다.
특히 르펜 총재가 2015년 4월 극우 매체 리바롤과 인터뷰에서 "페탱 장군을 매국노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발언을 한 이후 연락도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페탱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군에 부역한 비시 정부를 이끈 인물이다.
르펜 대표는 국민전선에서 반유대주의 같은 아버지의 색깔을 지우고 좀 더 온건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당을 포장했다.
르펜 총재는 그러나 딸의 목표가 과거 자신이 지향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르펜 총재는 "딸아이는 자신에게 충실한 것 같다"며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추종하고 수호하려 한 선에 충실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한 자신의 흔적을 지워 FN에 덧씌워진 악마적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딸의 시도에 대해 "이 전략에 가장 큰 문제는 딸아이가 나를 악마로 찍은 것인데 사실 난 천사를 닮았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지구촌 포퓰리스트 정파의 최고 성공사례로 꼽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동경을 감추지 않았다.
르펜은 "내가 딸이라면 기득권 배척을 증명하는 트럼프와 똑같은 방식의 선거운동을 할 것"이라며 "프랑스에는 반기득권 정서를 지닌 이들이 과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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