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 교차한 박근혜 정치인생, 검찰에서의 길었던 '21시간 반'(종합)

입력 2017-03-22 07:53
수정 2017-03-22 15:20
영욕 교차한 박근혜 정치인생, 검찰에서의 길었던 '21시간 반'(종합)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13가지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21일 검찰에 출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65년 평생 처음으로 검찰청사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하루'를 보냈다.

박 전 대통령은 오전 9시15분께 삼성동 자택에서 나와 청와대 경호실이 제공한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승용차에 올랐다.

평소처럼 올림머리를 했고, 짙은 남색 코트와 정장 바지를 입었다.



박 전 대통령이 탄 차 앞뒤로 경호 차량이 배치됐고, 경찰 싸이카 오토바이 8대가 뒤따랐다.

삼성동 자택에서 검찰청사까지는 5㎞가 조금 넘는 거리로, 평소 차로 20분 안팎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날 경찰이 신호통제를 하면서 단 9분만인 오전 9시24분께 서울중앙지검 중앙 현관 앞에 도착했다.



박 전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내자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앞다투어 터졌다.

기다리던 서울중앙지검 임원주 사무국장과 총무과 직원에게 잠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고, 안내를 받아 포토라인으로 발을 옮겼다.

바닥에 노란색 테이프를 삼각형 모양으로 붙여놓은 포토라인에 선 박 전 대통령은 잠시 멈칫하며 주변 취재진을 둘러보기도 했다.



'검찰 수사가 불공정했다고 생각하느냐'고 기자가 묻자 박 전 대통령은 질문과 상관없이 미리 준비한 발언을 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단 두 문장으로 짧은 입장을 밝혔다.

파면 11일만에 박 전 대통령의 육성이 처음으로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이 자리에 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을 뒤로 하고 박 전 대통령은 서둘러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간부가 이용하는 금색 엘리베이터가 아닌 일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001호 조사실이 있는 10층으로 직행했다.

조사에 앞서 오전 9시25분부터 조사실 옆에 마련된 1002호 휴게실에서 노승권 1차장(검사장급)과 10분가량 차를 마시며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노 차장검사는 박 전 대통령에게 조사 일정과 진행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면담 직후 조사실로 자리를 옮겼고 오전 9시35분부터 바로 조사가 시작됐다.

한웅재(47·연수원 28기) 형사8부장이 직접 조사를 맡았고, 검사 1명과 수사관 1명이 조사를 도왔다.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정장현 변호사 중 한 명과 함께 검사를 마주보고 앉았다. 나란히 앉지 않는 다른 입회 변호인은 박 전 대통령 뒤쪽에 마련된 별도의 책상에 앉아 대기했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박 전 대통령은 '검사님'이라고 답했다.

영상 녹화는 박 전 대통령 측이 동의하지 않아 이뤄지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한 부장검사로부터 총 8시간20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오전·오후·야간 조사는 각각 2시간30분, 4시간25분, 1시간25분이 소요됐다.

점심·저녁 식사 시간으로는 각각 1시간 5분, 1시간 35분 가량이 주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휴게실에서 변호인들과 함께 미리 준비해온 김밥·샌드위치·유부초밥이 든 도시락과 죽을 먹었다.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린 오후 조사 때에는 짧게 두 차례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5분간 잠시 숨을 돌린 뒤 오후 8시40분부터는 곧바로 이원석(48·사법연수원 27기) 부장검사의 조사가 이어졌다.

혐의가 13개에 이르는 만큼 조사는 자정을 넘어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체력적인 부담 등을 이유로 예상보다 이른 시간인 오후 11시40분께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은 7시간20분 동안 피의자 신문조서를 검토했다. 자신의 진술과 조서에 적힌 내용이 일치하는지, 용어나 취지가 제대로 기재됐는지 등에 관해 확인한 후 서명·날인하고서 조사실을 벗어났다.



22일 오전 6시54분께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박 전 대통령이 검찰청사 밖으로 나오자 취재진의 질문이 또다시 쏟아졌다.

박 전 대통령은 '아직도 혐의를 다 부인하시냐' 등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을 뒤로하고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타고 왔던 에쿠스 승용차에 올라타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bo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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