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유커 발길 끊겨 텅 빈 한중 카페리…중국인 관광객 '0'

입력 2017-03-20 16:46
수정 2017-03-20 17:02
[르포] 유커 발길 끊겨 텅 빈 한중 카페리…중국인 관광객 '0'

정원 800명 톈진∼인천 카페리 순수 여객 한국인 포함 딸랑 4명

"사드 여파 중국인 반한 감정 2011년 반일 감정보다 심각"



(톈진=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19일 오전 8시(현지시각) 중국 톈진(天津) 시내에서 차로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둥장(東彊)부두 국제여객터미널.

한국의 웬만한 지방 공항터미널보다 큰 규모였지만 외부에서는 인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넓은 주차장은 텅 비었고 통행하는 자동차나 사람이 없어 마치 영화 속 연출된 장면처럼 느껴졌다.

터미널 입구를 지키던 중국인 경비원은 정적을 깬 이용객(기자)의 출현에 뜻밖이라는 듯 당황한 모습이었다.

"미안합니다. 10분만 기다리세요. 보안검색원이 나올 겁니다."

무전을 받고 부랴부랴 근무지로 온 보안요원은 탐지봉으로 몸수색과 가방 검사를 마친 뒤 터미널 입장을 허락했다.

인천으로 향하는 정원 800명인 2만7천t급 카페리(화객선) 출항을 2시간여 앞뒀지만 거대한 터미널 내부에는 경비원과 청소원, 안내원 등 근무자 10여명 이외에 순수 이용객이 한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인천행 카페리 승선권 판매를 담당하는 나이 지긋한 중국인 남성은 "원래 이렇게 여객이 없느냐"는 물음에 "단체관광객이 이번 주부터 배편 이용을 모두 취소해서 그렇지 예전 같으면 매번 운항마다 만원이라 이 시간엔 표를 사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충칭(重慶)과 함께 중국의 4개 직할시 중 하나인 톈진에서는 얼마 전까지 매주 일요일과 목요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700명 넘는 단체관광객이 카페리를 타고 인천으로 떠났다.

중산층 중국인들 사이에 1인당 500∼800위안(8만5천∼13만5천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카페리 한국5일 관광'은 나름대로 매력적인 관광상품이었다.

12명이 함께 쓰는 카페리의 일반선실 왕복 2박을 하고 한국에 도착해서도 수원, 파주 등지의 저가 숙박시설에서 묵기 때문에 열악하기는 하다.

하지만 톈진∼인천 카페리 뱃삯에도 못 미치는 값싼 비용으로 한국을 방문해 면세점과 인삼판매점 등에서 평균 2천∼3천위안(35만∼51만원)씩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쇼핑관광의 재미는 쏠쏠하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쏟아내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 15일부터 중국 내 여행사에서 한국으로 가는 단체관광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기존에 예약한 상품도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인천에서 마지막으로 중국인 단체관광객 500여명을 태우고 전날 톈진으로 돌아온 이 카페리에 이날 오전 승선한 여객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합쳐 모두 11명.

배 안에서 식료품, 의류, 건강식품, 화장품 등의 매장을 운영하는 한국인들과 기자를 뺀 순수 여객은 한국인 2명과 중국인 2명이 전부였다.

중국인 2명도 친지를 방문하는 동포와 중국 여행사 관계자여서 정원 800명의 카페리는 단체·개별 구분할 것 없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단 한 명도 타지 않은 상태에서 텐진항을 출항했다.

20일 오후 인천항에 도착할 때까지 26시간 동안 배 안은 쥐죽은 듯한 적막감만 흘렀다.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즐겨 찾았던 배 안 가전제품 판매점과 면세점은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

20분가량 배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마주친 사람은 무전기를 손에 든 객실 담당 승무원과 매점 점원뿐이었다.

선내 상점 주인은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있었으면 노래 부르고 떠드는 소리에 정신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날 배 안은 깊은 산속 사찰을 바다 위에 옮겨 놓은 것처럼 고요했다.

유커들이 주로 이용해온 12인용 일반선실은 한쪽에 침구가 가지런히 정돈된 상태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인 여승무원은 "선내 매장 운영자 외에 순수 여객은 5∼6명뿐이지만 200개가 넘는 컨테이너를 적재한 큰 배를 움직이기 위해 60여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다"고 말했다.



식사시간에도 식당에서 여객 2∼3명만 밥을 먹었다.

선사 측은 톈진∼인천 카페리를 탈 예정이었던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이달 말까지 예약을 이미 모두 취소했고 다음달도 잠정 취소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과 중국 각지를 잇는 10개 카페리 항로는 전체 한중 카페리 여객의 60% 이상을 운송한다.

지난해는 전년보다 13.1% 늘어난 92만명이 인천∼중국 카페리를 이용했다.

한중 양국이 합작해 설립한 카페리 선사들은 중국인 관광객 방한 중단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2011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분쟁 당시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일본이 입은 피해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일본 관광을 금지시킨 2012년 10월부터 11개월간 일본에서 중국인 관광객은 평균 28.1%가 줄었다.

배에서 만난 한 중국 동포는 "중국 일반인들의 반한 감정이 5∼6년 전 댜오위다오 분쟁 때 반일 감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있다"며 "중국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넘쳐나는 애국구호와 한국제품 불매운동의 수위로 보면 사드 배치로 촉발된 양국 간 감정의 골이 온전히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 보인다"고 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는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60% 줄어드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한국의 관광수입은 5조5천억원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s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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