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드갈등' 장기화 가능성…양국관계 뇌관으로 지속되나

입력 2017-03-19 15:00
美·中 '사드갈등' 장기화 가능성…양국관계 뇌관으로 지속되나

틸러슨 중국선 사드보복 묵묵부답…미중정상회담서 해법 모색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처음 마주한 미국과 중국의 외교 수장이 사드보복 문제를 '뜨거운 감자'로 대했다.

한국에서 사드보복 자제를 강조했던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18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한 뒤 공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해법 논의에 집중했을 뿐 '사드'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아 관심이 쏠렸다.

왕 부장이 사드 문제에 대해 중국 입장을 피력했다고 밝혔을 뿐이었다.

중국의 사드보복을 중단케 할 카드로 거론됐던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문제도 거론되지 않았다.

중국 당국과 민간의 사드 보복이 현실화해 그 피해가 막심한 한국으로선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다.

형식상으로 보면 틸러슨 장관은 한국에선 북핵 위협 대비용인 사드 배치 정당성을 부인하면 중국에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보복할 수 있음을 암시했으나 중국에선 그와 관련해 침묵을 지킨 모양새가 됐다.

따라서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이런 태도를 취한 데는 뭔가 속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미중 간에 북핵 문제와 함께 최대 현안이었던 사드 문제를 '뇌관'으로 묵혀둔 것은 이 문제가 그만큼 첨예하게 맞서는 갈등 사안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틸러슨 장관과 왕 부장은 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집중하여 논의하기는 했지만, 양국간 이견만 부각될 바에야 공개 기자회견에서는 거론치 말자고 합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회담 주최국인 중국 측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여타 현안 논의가 흐려질 수 있다는 이유로 사드 문제를 접어둘 것을 요구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게 현지 외교가의 관측이다.



사드 논의에서 중국이 발언 주도권을 가졌다면 앞으로 미중 양국간 사드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뿐더러 중국의 한국에 대한 사드보복도 장기화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아가 양측이 사드 문제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은 북핵 문제와 관련한 시각과 해법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과 맥이 닿는다.

북한의 도발·위협에 대해 군사적 해결 방안을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검토 중인 미국과, 6자회담 재개 등 대화를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 차이는 선명했다.

틸러슨 장관이 "북한에 영향력 있는 중국과 협력하겠다"며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자 왕 부장은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간 문제"라며 미국에 책임을 떠넘겼다. 미국은 '중국 역할론'을 부각한 데 비해 중국은 '공동책임론'을 내세워 6자회담을 열자고 맞섰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향후 사드갈등의 추이는 여러가지 굵직한 국제 정치·외교사안과 맞물려 갈 공산이 커졌다.

주요 변수는 내달 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 그리고 5월 9일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될 전망이다.

틸러슨 장관의 방중을 통해 북핵·사드 문제에 대해 서로 입장을 확인한 미중 양국은, 구체적인 실무 협상을 통해 해법ㅇ르 타진할 것으로 보이며 미중 정상회담 자리에는 나름대로 조율된 해법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대선에서 어떤 성향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느냐도 북핵·사드 해법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국 대선에서 대북 강경책이 아닌 대화병행을 주장하는 후보의 당선을 바라고 있어 보인다.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 등을 수단으로 중국이 더 과감한 대북제재에 나서도록 압박하고 사드보복 조치도 철회할 것을 촉구할 가능성이 있다.

틸러슨 장관이 '전략적 인내' 정책의 폐기를 선언하고 군사행동 불사 등 초강경 대북 메시지를 발신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이 여러 해 동안 미국을 가지고 놀았다. 중국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힘을 실어준데서도 이런 분위기가 읽힌다.

만약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미중, 한중간 사드갈등 논의의 틀도 급변할 수 있다. 이 경우 중국 역시 미국에 끌려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중 양국이 남중국해, '하나의 중국', 무역전쟁 등과 한 묶음으로 전략적 빅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이유로 '약한 고리'인 한국을 공격함으로써 한국 민심을 동요시키고, 그로 인해 한미 동맹이 타격을 받는 만큼 이를 협상카드로 활용하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이 대(對) 한국 사드보복을 철회하는 대신 미국이 대만과의 관계개선 시도를 통한 '하나의 중국' 원칙 훼손을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앞으로 남은 정치일정을 감안해 사드보복에 대한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미국은 4년전에도 중국에 유사한 거래를 제안한 바 있다. 존 케리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13년 4월 베이징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은 동아시아에 배치된 미사일 방어망(MD)을 축소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역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없다면 사드도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로 응수하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앞서 북핵을 "사드가 필요하도록 만드는 위협"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한 소식통은 "미중, 한중간 협의에 따라 사드갈등이 정치적으로 풀릴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와 반한 분위기는 중국 내부정치 논리에 따라 한동안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사드보복 조치의 흐름에 따라 올해 25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도 분수령을 맞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joo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