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유럽 중심 잡아라" 전방위 외교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근래 보기 힘들었던 전방위 외교에 나섰다.
우익포퓰리즘 확산과 보호무역 기류를 억제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같은 집단안보체제 근간을 유지하는 것으로 독일 이익과 유럽 프로젝트를 보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한 최정점의 정치일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17일(현지시간) 회담이다.
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인 데다 둘의 정치적 신념과 주요 정견이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회동 결과가 주목된다.
지멘스 등 독일대표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동행한 메르켈 총리로선, 그 동행이 웅변하는 것처럼 미국의 징벌적 국경관세 경계가 주요 대처 과제 중 하나다.
주간 슈피겔은 미국이 해외생산 대미 수출기업에 징벌관세를 물리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것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게 독일의 입장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이 매체는 물론, 메르켈 정부로선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싶어 한다고 했지만, 독일 대연정의 방미 준비문서를 토대로 기사를 썼다고 전해 가벼운 분위기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시사했다.
유럽 최대 발행 부수의 대중지 빌트는 이날 사설을 통해 국경관세 부과는 "무역전쟁을 촉발할 뿐이며, 이는 더는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라고까지 짚었다.
그러고는 "무역전쟁 시 독일도, 미국도 승자가 될 수 없다"면서 "양국은 수백만 일자리를 잃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양국 사이에 이 이슈를 두고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메르켈 총리는 전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회담을 하고 나서 슈테펜 자이베르트 대변인을 통해 두 지도자가 "자유무역과 열린 시장"을 지지한다고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독일 최대 교역 파트너 국가가 최초로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뀐 상황에서, 그것도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하루 앞두고 나온 이 언급은 시선을 끌었다.
트럼프와 메르켈은 이와는 결을 달리해, 서구민주주의 가치의 공동기반 위에서 '대서양 동맹'의 근본을 확인하고 나토 집단안보체제 직시와 독일의 국방비 증액을 포괄하는 이슈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협력질서 문제에 관해서도 공통분모를 찾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의제는 대(對) 러시아 접근에 관한 것일 수 있다. 과거 정부보다 러시아에 좀 더 다가서 보려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메르켈 총리는 실효 있는 조언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인물로 꼽힌다.
러시아어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한 메르켈 총리는 서방 지도자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푸틴 대통령과 교류하고 수시로 전화통화까지 하는 사이다. 대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분쟁 이슈를 대하는 시각과 태도의 교환이 주목되는 배경이다.
메르켈 총리가 당수로 있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의 바이에른주 자매 보수정당인 기독사회당의 호르스트 제호퍼 당수가 전날 푸틴을 방문한 것도 시기적으로 이와 관련돼 주목받았다.
90분가량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푸틴과 제호퍼의 만남 이후 메르켈 총리가 오는 5월 2일 모스크바를 찾아가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한다는 주요 정치일정이 발표됐다.
메르켈 총리는 아울러, 전날 유럽 질서를 이끄는 쌍두마차 격인 프랑스의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중도 신당 후보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장관을 만났다.
지금 지지세로 봐선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분석되는 마크롱 후보는 회담 이후 '유럽군 지휘부' 같은 주제도 논의됐음을 전한 뒤 "유럽과 독일을 고려하지 않은, 프랑스만을 위한 (유럽 차원의) 계획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양국 간 공조와 협력을 강조했다.
이 회담 이후 마크롱 후보를 따로 만난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교장관은 "유럽 지향의 분명한 메시지를 가진 유일한 후보"라고 그를 평가하고 "유럽은 강력하고도 유럽 지향적인 프랑스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dpa 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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