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지도 변한다] '사과의 고장' 충주서 명품 천혜향 생산
수막 하우스 재배로 보일러 안 때고 월동…열대과일 메카 변신 시도
(충주=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겨울을 어떻게 나느냐가 관건입니다. 추위만 잘 이겨내면 아열대나 열대 과일도 충분히 재배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 사과 산지인 충북 충주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김상기(61)씨의 말이다.
충주에서 생산되는 감귤은 '탄금향'이라는 독자 브랜드를 갖고 있다.
품종도 감평,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 다양하다. 맛과 당도도 감귤의 본고장 제주산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향기가 좋아 서울 유명 백화점에도 납품된다.
탄금향은 지구 온난화에 대비해 충주시가 육성하는 대표적인 대체 작물이다.
충주시 단월동 감귤 하우스에서 만난 김씨는 손을 비롯해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그가 재배하는 천혜향은 가시가 많아 일하다 보면 여기저기 찔리고 긁히는 건 예삿일이다.
김씨는 "내륙에서도 감귤 농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천혜향은 가시 때문에 키우기가 힘들어 재배 농가가 많지 않다"며 "몸은 고되고 농삿일이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다"고 말했다.
충주에서 가장 큰 규모로 토마토 농사를 짓던 그가 감귤 나무를 처음 접한 건 11년 전이다.
자매결연한 제주 모슬포 토마토 작목반 회원들이 충주를 방문하는 길에 밀감과 한라봉 묘목을 20그루씩 가져왔다.
남들은 별 관심이 없었지만 김씨는 호기심에 다른 회원 한 명과 함께 묘목을 가져다 나눠 심었다.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는 걸 본 그는 감귤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농사 기법을 배우러 셀 수 없을 정도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항공료로 나간 돈만 해도 어림잡아 수천만원이다.
제주의 지인에게서 "나무 심고 1년만 놀면 수확을 본다"는 말을 듣고 시작했지만, 실제로 수확을 보기까지는 훨씬 더 오래 걸렸다. 그는 "3년을 꼬박 놀았다"고 했다.
농사가 본궤도에 오른 뒤에도 어려움은 이어졌다.
감귤은 해거리가 심해 어떤 해에는 열매가 하나도 달리지 않는 나무가 수두룩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8년 됐지만 처음 3년과 해거리를 맞은 2년을 빼고 겨우 3차례만 제대로 된 수확의 기쁨을 맛봤다.
지난해에는 약 6천600㎡(2천평)에서 8천상자(1상자 3㎏ 기준)를 수확했다.
탄금향은 제주산이 나오기 전인 11월부터 수확한다.
틈새시장에 출하되기 때문에 가격도 더 비싸다. 대신 제주산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 판매를 마무리해야 한다.
충주를 비롯한 내륙에서 감귤 농사가 가능한 것은 수막(水膜)을 활용한 비닐하우스 재배 덕분이다.
비닐하우스를 이중 또는 삼중으로 설치하고 지하에서 끌어 올린 암반수를 안쪽 하우스에 흘려 수막으로 감싸준다.
이렇게 하면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고도 한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을 유지할 수 있다.
충주에서는 김씨를 비롯해 농가 2곳에서 감귤 재배를 시작해 지금은 일곱 농가가 4.5㏊를 재배한다.
감귤뿐 아니라 블랙초크베리, 얌 빈, 패션프루트 등 이름조차 낯선 열대 과일과 작물이 충주의 미래 전략 작물이다.
2015년에는 아메리카 아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패션프루트가 처음 재배됐다.
패션프루트는 시계꽃과의 과일로, 100가지 향과 맛이 난다고 해서 백향과로 불린다.
비타민C가 석류보다 3배 이상 많고 당도도 높아 '여신의 과일'이란 애칭도 붙었다.
재배 농가 1곳, 재배 면적도 0.2㏊밖에 안 되지만 사과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재배 과수에 절대적으로 의지해 온 충주 원예농업 판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열대작물 얌 빈(히카마)은 2014년 충주시 농업기술센터가 시험 재배에 성공해 현재 일선 농가에서 재배가 이뤄진다.
얌 빈은 생육이 양호하고 병해충 저항력이 강하며 뿌리의 생장 상태도 좋아 충주 기후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투사들이 강장제로 복용하고 클레오파트라도 즐겨 먹은 것으로 알려진 무화과와 멜론도 재배되기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일찌감치 보급된 열대작물도 재배 농가가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2014년 8곳에 불과했던 블랙초크베리 재배 농가는 1년 만에 2배가 넘는 19곳으로 늘었다. 재배 면적도 1.6㏊에서 4.2㏊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블루베리 재배 농가도 32곳에서 43곳으로 증가했다.
충주시가 국내 최고의 사과 산지란 자존심을 버리고 열대 과일에 눈을 돌리는 것은 온난화 때문이다.
전체 농업에서 사과, 복숭아를 비롯한 과수 비중이 47%에 달하는 충주로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기온 상승으로 한반도 기후가 점차 아열대로 바뀌는 걸 고려하면 주력 과일이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저한 사전조사와 준비 없이 무턱대고 기존 작물을 갈아엎고 새로운 작물 재배에 뛰어드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김씨는 "시장 상황을 꼼꼼히 살펴보고 재배 기술도 충분히 익힌 다음 시험 재배를 거쳐 농사를 시작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k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