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에게 물렸어요"…응급실에만 하루 1∼3명꼴

입력 2017-03-17 06:25
"반려동물에게 물렸어요"…응급실에만 하루 1∼3명꼴

가볍게 봤다가 중증 감염질환으로 수술하는 경우도

국내 환자 실태파악 안돼…"응급처치 후 신속히 병원 찾아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 임신부인 A씨(27.직장인)는 1년 전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한테 손가락을 물린 사고를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당시 찢어진 상처 부위가 1㎝가량으로 깊었지만, A씨는 임신 23주째인 데다 직장에 다니는 터라 상처가 아물기만을 바라며 병원 치료를 미뤘다. 하지만 이렇게 방치한 후 1개월이 흐르자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주변 손가락까지 심하게 부은 것은 물론 통증과 열감 때문에 관절의 움직임조차 불편해졌다. 어쩔 수 없이 동네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항생제에도 반응이 없었다. 결국 A씨는 인근 대학병원 성형외과를 방문했다. 진단결과 1.5cm 크기의 고름 주머니가 3번째 손가락 바닥 쪽에서 관찰됐고, 뼈를 둘러싼 연부 조직의 부종과 함께 감염성 관절염을 동반한 골수염으로 최종 진단이 내려졌다. 의료진은 A씨가 임신 중인 점을 고려해 고름을 빼는 수술적 처치를 한 다음 5일 후까지 상처 부위를 봉합하지 않은 채로 열어두고 매일 무균세척술을 시행했다. A씨는 상처를 꿰맨 후에도 4주간에 걸쳐 항생제를 복용하고 나서야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으며, 약 1년여에 걸친 추척 관찰 끝에 최근 완치 판정을 받았다.



개와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면서 A씨와 같은 '동물 교상' 사례도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매년 200만명 이상의 환자가 동물한테 물려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전체 응급실 내원 환자의 약 1%를 차지한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동물 교상에 대한 국가적인 통계치가 없다. 다만,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급증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한국도 미국과 비슷한 추세가 예견될 뿐이다.

강형구 한양대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는 "국내에도 동물 교상 환자가 만만치 않게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요즘 응급실에만 하루 평균 1∼3명의 동물 교상 환자가 찾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동물 교상은 여러 가지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개나 고양이의 송곳니에 물리면 깊은 관통상을 일으켜 힘줄과 신경이 손상될 수 있고, 관절을 건드리면 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 또 피부에 흉터를 남겨 환자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는 것은 물론 장기간 치료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상처에 따라서는 세균 감염률이 높고, 다양한 바이러스를 옮기기도 한다.

동물 교상의 가장 많은 원인은 개다. 미국의 경우 매년 100만명 이상이 개에 물려 상처를 입는데, 이는 병원치료를 받는 동물 교상의 80~90%를 차지할 정도다. 개한테 가장 많이 물리는 연령대는 10세 미만이다. 성인은 주로 손이나 다리를 물리지만, 소아는 머리나 목 부위를 물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치명적인 개 교상은 대부분 개의 주인이나 친숙한 사람을 상대로 발생했으며, 떠돌이 개에 의해 발생한 경우는 드물었다. 다만, 대부분 애완견의 송곳니가 날카롭지 않기 때문에 상처의 형태는 주로 관통상보다는 찢기거나 조직이 떨어져 나가는 사례가 많은 편이다.

개에 견줘 고양이는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좀 더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어 조직을 더 깊게, 그리고 관절을 좀 더 쉽게 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고양이에 의한 교상이 매년 30만건 정도 발생하는데, 이는 전체 교상 중 5∼15%를 차지한다. 교상의 빈도는 개와 달리 성인과 소아의 비율이 비슷하고, 노인과 여성에게 피해가 잦다. 물리는 부위는 손과 팔이 90% 이상이다.

고양이 교상의 특징은 피부 상처가 작아서 초기에 치료를 받지 않다가 상처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A씨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상당수가 감염 등의 합병증이 발생한 이후 병원을 찾지만, 이때는 2차 감염으로 치료가 늦거나 장애를 남길 수밖에 없다.

A씨의 사례를 대한창상학회지에 보고한 박은수 순천향의대 부천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평소 아끼던 애완동물이 상처를 냈다고 해서 그냥 방치했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만약 상처 부위가 깊고 통증이 느껴진다면 소독약 등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가급적 빨리 병원을 찾아 치료받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실제 고양이에게 물렸을 때의 감염률은 개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할퀸 상처도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묘소병'(cat scratch disease)이 대표적인데, 드물게는 심내막염이나 뇌수막염, 골수염 등의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발전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애완동물에게 물리면 다양한 바이러스가 전신에 감염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도 우려되는 만큼 평소 예방접종을 철저히 하고, 응급실 등의 의료기관에서도 신속하고 적절히 처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형구 교수는 "환자가 상처를 가볍게 생각해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의료현장에서 다양한 이유로 불완전한 처치를 받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국내 동물 교상 환자에 대한 대규모 역학조사와 함께 이를 바탕으로 한 교상 환자 처치 지침이 개발, 보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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