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마음을 채우는 합천 영암사지

입력 2017-04-11 08:01
[연합이매진] 마음을 채우는 합천 영암사지

"묻는 만큼 답하고, 보려는 만큼 보여주는 곳"

(합천=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며 산다 …(중략)…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정호승의 ‘폐사지처럼 산다’





마음이 울적하거든 세상살이에 지치거든 폐사지로 떠나라. “아무것도 없는 곳에 대체 뭐하러 가느냐”고 할 수 있지만, 폐허가 된 절터는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폐사지(廢寺址)로 떠나는 답사여행은 단순히 무너진 옛 절터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다. 비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사라져 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시간을 거슬러 당시의 사상과 문화, 민초의 꿈을 퍼즐 조각 맞추듯 상상해보는 것이다. 절터의 흔적을 들여다보면서 머릿속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면 왠지 모를 쓸쓸함을 뒤로 하고 헛헛한 마음을 채울 수 있다. 폐사지가 ‘텅 빈 충만’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정해식 문화관광해설사는 “폐사지 답사가 다 그러하듯이 영암사지는 묻는 만큼 답하고, 보려는 만큼 보여준다”며 “책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미리 꼼꼼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단순히 망가지고 무너진 절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 모산재 기암절벽 밑 자연과 하나 된 절터



합천 황매산 자락의 모산재 밑 산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영암사지(靈巖寺址, 사적 제131호)는 신비롭고 비밀이 가득한 절터다. 절터는 기암절벽과 잘 어우러지고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 귀부(龜趺) 등 보물 3점이 옛 영화를 증언한다. 절집 영암사에 대한 창건기록은 없고 내력에 대한 기록만 일부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탁본 서첩에서 발견된 ‘영암사적연국사자광지탑비’에는 고려 현종 때(1014) 적연선사가 지금의 가회면인 가수현에서 83세로 입적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금오산 자락에 세워진 선봉사 대각국사비에는 천태종 5대 사찰로 원주 거돈사, 진주 지곡사, 해주 신광사, 여주 고달사와 함께 영암사가 기록돼 있다. 문헌에 남은 기록은 조선 고종 때(1872) 제작된 삼가현지도에 ‘영암사고지’(靈巖寺古地)란 글자와 탑이 표시된 것이 유일하다. 각종 기록으로 미루어보면 흔적만 남기고 오간 데 없이 사라진 영암사는 9세기 초중반에 창건돼 1872년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4년부터 2011년까지 다섯 차례 발굴 조사를 거쳐 금당(金堂), 서금당(西金堂), 회랑(回廊) 등 건물터가 발견됐다. 회랑은 경주 불국사나 황룡사지, 익산 미륵사지처럼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집이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다.

“영암사에서 큰 법회가 열려 왕자가 말을 타고 영암사를 방문하던 중에 말이 계곡 다리를 건너는 순간 우렁찬 범종 소리에 말이 놀라 왕자가 계곡으로 떨어져 중상을 입었으며, 그래서 왕이 진노하여 절을 불태우게 하였고, 불은 3년 동안 타올라 대가람 영암사는 사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3년 넘게 타고 남은 것이라니, 절의 규모가 대단했으리라는 것을 전설로나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합천 출신인 정해식 문화관광해설사는 “어릴 적부터 들어온 전설”이라면서 “절의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어서 오히려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다”고 했다.

◇ 영암사지 유물 중 백미 '쌍사자석등'

영암사지는 여백의 아름다움과 함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6권의 표지를 장식했던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이 방문자의 눈길을 잡아둔다.

불법의 불을 밝혀 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위는 지붕돌로 덮고, 아래는 3단 구성의 받침을 두었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다. 아래 받침돌에는 연꽃이 조각됐고 그 위로 꼬리가 아름다운 사자 두 마리가 마주 보며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사자의 뒷발은 아래 받침돌을 딛고,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 뒷다리에서 힘이 느껴지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엉덩이에서는 석공의 해학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석공의 손기술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보은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광양 중흥사지 쌍사자석등(국보 제103호)과 함께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쌍사자석등이다. 1945년 광복 이후 문교부에서 국보 제531호로 지정했지만, 1963년 재사정 때 사자 다리가 부러져 있었기 때문에 보물로 격하됐다. 정해식 문화관광해설사는 “1933년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반출하려던 것을 막아 가회면사무소에 보관했다가 1959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며 “반출하기 위해 석등의 사자 다리를 절단하지 않았다면 국보로도 손색없는 유물”이라고 강조한다.

석등을 받치고 서 있는 두 사자 사이로 삼층석탑(보물 480호)이 보인다. 쌍사자석등보다 한 단 낮은 마당에 우뚝 서 있는 삼층석탑은 기단과 삼층의 탑신, 그리고 상륜부로 이루어진 석탑이지만 상륜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빈 절터에 홀로 선 석탑과 쌍사자석등이 서로를 달래며 천년세월을 오롯이 견디어 온 형제처럼 느껴진다.



◇ 계단 장식 중 최대의 걸작인 ‘가릉빈가’

쌍사자석등 뒤의 건물터가 본존불을 안치하는 절집의 중심인 금당이다. 금당 터는 사방이 소통되는 개방형 구조로 기단과 계단, 그리고 주춧돌들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기단에 다양한 문양을 새겼는데, 금당을 돌아보며 하나씩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단은 지대석을 돌리고 사방을 둘러가며 안상(眼象, 코끼리 눈 모양)을 새겨 놓았다. 또 금당을 떠받친 기단부에 새겨진 동물상 부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표정과 자세가 사자 같기도 하고 혹은 삽살개 같기도 하다. 부처님의 말씀을 사자후(獅子吼)라 말하고 있듯이 사자이기를 바라면서 한참 바라보니 사자였다.

금당을 오르는 사방의 계단에는 소맷돌이 남아 있는데, 그중 동쪽 계단의 소맷돌에는 새의 몸에 사람의 얼굴과 팔을 가진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 모습이 새겨져 있다. 부드러운 신체 곡선과 춤추는 듯한 두 팔의 환상적인 율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데 계단 장식 중 최대의 걸작으로 꼽힌다.

금당은 그리 넓지 않은 터이지만 정사각형으로 세 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졌다. 주춧돌이 제법 가지런히 놓여 있고 금당 중심에는 본존불을 모셨던 듯 사각형의 받침돌 형태를 한 석부재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거센 바람만 맴도는 텅 빈 공간에서 금의(金衣)를 입고 사방에 환한 진리의 기운을 뿜어내는 본존불을 떠올려본다. 언제쯤 금당이 없어지게 됐을까. 영암사지는 이래저래 상상의 공간이다.

십여 단씩으로 쌓아 올린 석축도 특이하다. 화강석을 가지런히 쌓았는데 간간이 무너짐을 방지하려고 불국사에서나 볼 수 있는 돌못을 박았다. 특히 금당 터 앞 석축은 마치 성벽의 치(雉)처럼 석축의 한가운데를 툭 튀어나오게 하고, 그 위에 쌍사자석등을 올려놓았다. 석축 양옆으로 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두었는데 통돌을 깎아 만든 무지개 모양이다. 마모된 돌계단에서 또다시 석공의 공력을 상상해본다.



금당 터에서 수풀 우거진 길을 50여m 따라가면 돌 거북 둘이 빈터를 지키는 서금당 터가 나온다. 원래의 금당 터와 시간 간격을 두고 조성된 조사당(祖師堂)으로 추정되는데 건물터 양옆으로 귀부(龜趺) 2기(보물 489호)가 웅크리고 있다. 귀부는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의 받침돌로, 원래는 그 위로 비신(碑身)이 얹혀 있었으나, 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는 간 곳을 모른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머리처럼 생겼고, 입을 쩍 벌린 채 여의주를 물고 있다. 네모난 비좌(碑座) 둘레는 구름 문양과 연꽃잎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영암사지는 모산재(767m)가 병풍처럼 둘러 더욱 신비롭다. 이름에 산이나 봉이 아니라 고개를 뜻하는 ‘재’가 붙어 특이한데, 철쭉군락지로 유명한 황매산(1,113m) 자락의 하나로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돌산이다. 풍수학자들에 따르면 엄청난 기(氣)가 흐르는 명당으로, 정상 부근에는 사계절 물이 고여 있는 무지개 터와 순결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면 바위틈이 오므라들어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순결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폐사지 맨 아래 석축에서 올려다보면 삼라만상형의 기암괴석과 빈터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는 영암사지가 잘 어울린다.

혹독한 추위 뒤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날 영암사지는 천년세월의 흔적을 밟으며 잠시 속세를 떠나 마음을 가다듬고 무상함 속에서 솔직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4월호 [문화유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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