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수석 이재우 "195cm·92kg…더는 단점 아냐"
22일 개막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서 왕자·마녀 역 번갈아 연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재우(26)는 키 195cm, 몸무게 92kg의 국내 최장신 발레리노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무용수로서 최적의 신체 조건 같다. 큰 키와 단단한 근육, 작은 얼굴 때문에 가만히 서 있어도 카리스마가 넘친다.
그러나 중력과 싸우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발레의 특성상 이러한 신체 조건은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했다. 신체가 크기 때문에 점프나 회전 등의 동작에서 느리고 둔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자리한 국립발레단 연습동에서 만난 이재우는 "키 큰 무용수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모든 동작을 단신 무용수를 기준으로 연습해왔다"고 말했다.
"키가 어느 순간 훅 크면서 장신 무용수는 이런저런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저는 남들이 하는 동작은 나도 다 할 수 있고,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무용수들을 참고할 때도 무조건 키가 작은 무용수의 영상을 봤어요. 단신 무용수의 움직임과 타이밍에 맞춰 저를 훈련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의 근육 반응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움직임은 날렵해질 수 있었다.
같은 동작을 해도 체력 소모가 더 크기 때문에 근력 운동에도 더 힘을 쏟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신체를 부위별로 나눠 근력 운동을 해요. 하루는 상체, 다음날은 하체를 운동하는 식이죠. 그런데 저는 몸 전체 부위를 일주일에 하루 빼고 매일 훈련했어요. 똑같은 동작을 소화해도 지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체력 보충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하루에 4~5끼씩 먹는 것도 기본이고요. 하하."
타고난 재능과 성실성, 철저한 자기관리를 알아본 사람은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었다.
강 예술감독은 2014년 4월 '백조의 호수' 공연이 끝난 뒤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와 지그프리트 왕자와 그를 파탄에 빠뜨리는 악마 로트바르트를 번갈아 연기한 그를 수석무용수로 승급시킨다고 깜짝 발표했다.
2011년 말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당시 '솔리스트' 등급이었는데, 다음 단계인 '그랑 솔리스트'를 건너뛴 '파격 승급'이었다.
이날 인터뷰 장소에 들른 강 예술감독은 "재우가 들으면 안 된다"면서도 그에 대한 칭찬과 애정을 감추지 못했다.
"재우의 큰 키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중력을 더 받기 때문에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어마어마한 노력으로 점점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죠. 큰 키 덕분에 무대 위 장악력도 돋보이고요. 또 어떤 조언을 해주면 그게 무엇이든 100%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요."
강 예술감독의 신뢰 속에 그는 오는 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하는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도 데지레 왕자와 마녀 카라보스 역을 번갈아 연기한다.
주연 캐릭터 두 명을 연기하게 된 터라 리허설에 참여하는 시간도 두 배다.
그는 "두 캐릭터가 완전히 상반된 성격이라 다행히 동작이 헷갈리진 않는다"며 웃었다.
"데지레 왕자는 클래식 발레의 올바르고 정확한 동작을 보여줄 수 있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반면, 카라보스 역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가진 걸 더 많이 표현해야 하는 카라보스 역을 연기하는 게 더 즐겁네요."
공연은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관람료는 5천~8만원. ☎02-587-6181.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