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펼쳐지는 핏빛 액션…영화 '프리즌'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프리즌'은 교도소가 완전범죄의 온상이라는 역발상에서 출발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사고가 발생했던 1995년 지방의 한 교도소가 무대다.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모범수 익호(한석규)는 돈이 되는 일거리가 생기면 금고털이 등 '선수'들을 뽑아 교도소 밖으로 나가 범죄를 저지른 뒤 돌아온다.
이곳에 전직 경찰 유건(김래원)이 들어온다. 유건은 한때 검거율 100%를 자랑했지만, 뺑소니 등 각종 죄목으로 죄수복을 입었다.
교도소 입소 첫날부터 주먹다짐하는 등 말썽을 피우던 유건은 위기에 처한 익호를 몇 차례 구해주며 그의 눈에 들고, 익호의 오른팔이 돼 범죄 세계에 입문한다.
소재와 줄거리만 보고 코믹범죄 영화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어두운 색채의 액션 누아르 쪽에 가깝다.
이 작품은 철저히 남성 위주의 영화다. 남성 재소자들만 있는 교도소가 무대이긴 하지만, 조연급 여배우는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교도소 안은 철저한 위계질서가 작동하며 범죄와 모략, 배신, 복수가 판친다. 익호는 무자비한 폭력과 응징으로 이곳을 자신만의 범죄왕국으로 만든다. 그에게 걸림돌이 되면, 그 누구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응징한다. 신체 훼손은 물론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감옥 안에서 감옥 밖 세상을 굴리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익호에게 돈을 받는 교도소장, 교도관 역시 모두 한통속이다.
일부 재소자들은 왕 노릇을 하는 익호의 뒤통수를 호시탐탐 노린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정글 속에서 수컷들의 영역 다툼을 보는 듯하다.
다소 비현실적인 소재임에도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한석규와 김래원의 연기 덕분이다.
한석규는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아도 몇 마디 대사와 눈빛만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평소에는 감정의 변화가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평정심을 잃고 악인의 본모습을 드러낼 때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나현 감독은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주인공 삵(본명 정익호)에서 영감을 받아 익호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김래원도 한석규와의 기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주로 맞거나 때리는 등 액션 연기를 담당한 그는 들개 같은 야성미를 보여준다.
영화는 교도소라는 제한된 공간을 무대로 하지만,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주며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을 준다.
나 감독은 "교도소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사회질서가 정연하면 교도소 내부도 잘 돌아가고, 사회가 어지럽고 시스템이 엉망이면 교도소 분위기도 험악했다"면서 "시대적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부정부패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1995년과 1996년을 배경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촬영도 20여 년간 실제 죄수들이 살았던 전남 장흥 교도소에서 이뤄졌다.
영화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짜임새 있는 연출 등에 힘입어 막판까지 긴장감을 준다. 다만, 피비린내 물씬 나는 폭력과 몇몇 잔인한 장면에 고개를 돌리는 관객들도 제법 있을 법하다. 또 발상 자체는 신선했지만, 그 신선함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굳이 교도소가 아니라 교도소 담장 밖에 있는 범죄 조직에 등장인물들을 대입해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익숙한 장면도 많기 때문이다. 3월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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