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수원王갈비 납시오"

입력 2017-04-12 08:01
[연합이매진] "수원王갈비 납시오"

해방 후 '수원갈비' 요리 등장…푸짐해서 王 자 붙어

(수원=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그냥 '갈비'가 아니라 '왕갈비'다. 혹시 왕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일견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고기가 크고 푸짐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실제로 같은 1인분이라도 다른 지역의 갈비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이름하여 '수원왕갈비'다. 그럼 왕갈비의 행차를 한번 살펴보자.



검은 숯에서 붉은 불꽃이 이글이글 피어오른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뜨끈뜨끈해지는 잉걸불이다. 화로 위의 석쇠에 고기를 조심스레 얹어놓는다. 참숯불과 소갈비의 뜨거운 만남! 빨간색의 고기는 서서히 누런색으로 변해간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굽는 식객의 입에선 금세 침이 꿀꺽 넘어간다. 꼭 식전이어서만은 아니리라.

경기도의 대표 음식인 수원갈비. 상차림을 보면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넓은 상을 빼곡히 채운 반찬도 반찬이려니와 메뉴의 주인공인 소갈비의 크기와 생김새에 압도돼서다. 갈비가 화로와 함께 밥상의 정중앙을 당당히 차지한 가운데 12가지의 밑반찬들은 궁중 하인처럼 시립하듯 그 주변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다. 밥상 위에 재현된 궁궐의 모습이랄까.



◇ 일본 강점기 수원에 전국 최대 우시장



경기도 수원이 언제 어떤 연유로 갈비의 본고장이 됐는지 되짚어보자. 수원은 남쪽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사람은 물론 물산이 전국 곳곳에서 집합하고 통과하는 지역인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소들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 일본강점기에는 전국 3대 우시장이 바로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원이 소의 대표적 본향이 된 데는 조선시대 정조의 화성 축성과 관계가 깊단다. 새 도시인 화성을 축성하고 난 뒤 수원을 자립기반의 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둔전(屯田)을 경영했다. 그리고 그 둔전에서 농사를 잘 짓도록 농민들에게 종자와 소를 나눠줬다. 이후 점차 늘어난 소는 수원의 대표상품으로 팔리기 시작했고, 그 우시장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1940년대까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 우시장 덕분에 관련 음식이 탄생해 식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음식 재료로 쓰이는 한우갈비를 구하기가 쉬워서다. 지금의 수원갈비 요리는 해방 직후에 등장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수원화성의 팔달문 밖 영동시장에서 화춘제과점을 운영하던 이귀성 씨가 광복 후 업종을 바꿔 '화춘옥(華春屋)'이라는 음식점을 차리면서라는 것. 소갈비에 양념을 넣고 무쳐 만든 양념갈비를 숯불에 구워 팔기 시작했는데 그 맛이 일품이어서 인기가 삽시간에 치솟았다. 수원시민은 물론 전국에서 그 맛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1970년대에는 고위관리들은 물론 당시 대통령도 이 화춘옥에 와서 갈비를 먹고 갈 정도였다고 한다. 화춘옥 방식의 수원갈비는 1985년 4월 수원시 향토음식으로 공식 지정됐다.



◇ '생갈비' 담백…'양념갈비' 달콤

그렇다면 갈비 음식의 세계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본다. 먼저 재료다. 싱싱하고 질 좋은 소갈비를 중심으로 도라지삼채, 단호박 범벅, 연근 샐러드, 야채 겉절이, 가오리찜, 꽃게무침, 잡채, 궁채나물, 호박전, 열무김치, 나박김치, 양상추 샐러드 등 무려 12가지의 깔끔한 밑반찬이 밥상 위에 넉넉하게 펼쳐진다. 쌈장, 마늘 등 부재료들도 보인다.

이들 재료 중 갈비는 크기가 무척 커서 식객을 놀라게 한다. 갈비 1인분(수입산 기준)은 보통 450g. 얇게 펼쳐진 규모가 10×15cm가량 된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갈비이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고기다. 다른 지역의 갈비는 이보다 크게 적어 1인분이 통상 250g이라고 한다. 수원갈비는 예전의 명칭 그대로 푸짐한 '왕갈비'인 것이다.

갈비음식은 양념갈비와 생갈비로 크게 나뉜다. 1인분 갈비 가격은 수원 최대의 갈비 전문식당인 가보정의 경우 국내산이 생갈비(250g 기준) 5만3천원, 양념갈비 4만2천원이다. 미국산은 생갈비(450g 기준) 4만원, 양념갈비 3만4천원이다. 국내산을 마음껏 먹기엔 보통사람으로서는 아무래도 가격 부담이 좀 크다고 하겠다. 이 때문에 식당들은 점심시간에 저렴한 메뉴를 만들어 내놓고 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생갈비와 양념갈비는 화로의 숯불 상태를 어느 정도로 유지하는가에 따라 맛이 천양지차다. 물론 숯불은 가스불보다 깊고 은근한 구이맛을 선사한다.

먼저 생갈비는 센 불에 올리되 살짝 구워 얼른 꺼내 먹어야 제맛을 만끽할 수 있단다. 겉모습이 누렇게 익은 반면에 속살은 여전히 붉은 상태로 남아 있을 때 먹는 게 고기 맛을 즐기기에 최적이라는 얘기다. 불 위에 너무 오래 두면 육질이 질겨지고 파삭파삭해진다. 그냥 먹어야 고기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지만 취향에 따라 소금을 살짝 찍어 먹기도 한다.

생갈비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라면 생갈비는 연하면서도 달콤한 게 특징이다. 양념갈비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생갈비 조리 때보다 불을 약하게 한 채 천천히, 그리고 은근하게 익혀야 한다. 센 불로 구울 경우 살이 금방 타 버리기 십상이다. 생강, 마늘, 소금 등 양념이 살에 발라진 상태라서 그렇단다. 다 익은 고기는 석쇠 위의 갈비뼈에 올려놓고 따끈한 상태에서 하나씩 먹으면 된다. 식은 고기는 맛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 후식으로 노란 잣 동동 뜬 수정과 나와

식당에서 만난 손님들은 한결같이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원 거주자인 이효주(57)ㆍ경희(55) 씨 자매는 "고기가 신선하고 많은 데다 반찬도 정갈하게 많이 나와 종종 이곳 갈비 음식집을 찾는다"면서 "점심때는 저렴하게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있어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아내, 딸과 함께 대구에서 왔다는 박규홍(80) 씨는 "관광을 하고 수원갈비도 먹으러 일부러 왔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갈비를 풍성한 반찬과 함께 맘껏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갈비를 먹고 난 후의 식사로는 보통 공깃밥에 된장찌개나 냉면이 올려지고, 후식으로는 노란 잣이 동동 뜬 달콤한 수정과가 제공돼 개운하게 입가심할 수 있다. 식당 종업원 김모(46) 씨는 "고기 양이 외지의 갈비음식보다 많지만 손님들은 남김없이 잘 드신다"고 귀띔한다.

수원의 대표적 갈비식당으로는 가보정과 본수원갈비를 꼽을 수 있다. 1992년 생긴 가보정의 경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만 모두 3곳의 식당을 1천450석 규모로 운영한다. 이 식당의 김외순 대표는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것이 제 사명이다. 자식들의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면 엄마들은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부른 것처럼 손님들이 맛있게 음식을 드시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에서는 해마다 갈비축제가 열려 그 맛과 명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1995년 시작된 수원양념갈비축제는 근래 들어 가을에 개최되는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에 함께 펼쳐진다. 수원시는 중국과 일본의 자매도시와 손잡고 한ㆍ중ㆍ일 음식문화축제도 열고 있다.

수원에 온 김에 갈비도 즐기고 관광명소도 들러본다면 일거양득이 될 수 있다. 대표적 관광지는 총연장 5.744km인 수원화성(水原華城).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 선양과 왕권 강화 목적으로 1794년 축성 공사를 시작해 2년 뒤인 1796년 완공했다. 실학자 유형원과 정약용이 설계한 화성은 20년 전인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화성은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4월이면 더욱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치장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4월호 [음식기행]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