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시대가 낳은 괴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17-03-14 16:57
참혹한 시대가 낳은 괴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임철우 소설집 '연대기, 괴물'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소설가 임철우(63)가 다섯 번째 소설집 '연대기, 괴물'(문학과지성사)을 냈다. 1981년 등단 이래 참혹한 현대사를 끊임없이 독자에게 되새김질시켜온 작가다. 긴 호흡의 단편 7편 가운데 표제작 '연대기, 괴물'은 보도연맹 사건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반세기 넘는 기간의 비극이 한 인간에 집약됐다는 점에서 압도적이다.

2015년 10월23일 오후 5시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에서 투신자살한 송달규는 전쟁 중이던 1951년 서해와 남해의 접점에 있는 섬에 태어났다. 전쟁은 외딴 섬까지 집어삼켰고, 외딴 섬이기에 그 기억은 오래 남았다. 송달규는 무섭고 끔찍한 전쟁을 어린 시절 어른들 이야기 속에서 경험했다.

저도 모르게 보도연맹에 가입된 섬사람 수백 명이 빨갱이로 몰려 바닷물에 수장됐고 바다 위에 시신으로 떠다녔다. 투박한 이북 사투리를 쓰던 '빨갱이 사냥꾼' 서북청년단을 어른들은 '몽둥이패'라고 불렀다. 길이 1미터쯤 되는 쇠갈고리를 휘두르고 다니던 김종확이 우두머리였다.

외조부 밑에서 자란 송달규는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다. 어머니는 서북청년단이 철수할 때 마을을 떠났다가 몇 년 뒤 다시 돌아와 두 살배기 송달규를 떨궈놓고 다시 떠났다. 송달규는 일고여덟 살 때 괴물을 처음 맞닥뜨렸다. "피 묻은 쇠갈고리를 쥔 사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수많은 시체들. 수면 위에 해파리처럼 풀어져 너울거리는 여자들의 치렁한 머리채……"

베트남전쟁에 끌려간 송달규는 사람을 처음 죽이고 나서 스스로 괴물이 됐다. 제대하고 원양어선을 타던 1980년 광주에서 '굉장한 난리'가 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입대 전 육지로 나와 신세를 진 세탁소 주인은 공수부대에 맞아 정신이 망가졌다. 송달규도 영혼을 추스르지 못한 채 수십 년을 보냈다.

어릴 적 들은 보도연맹의 비극은 인근 수역에서 세월호 참사로 되살아났다. 서북청년단도 '재건준비위원회'라는 이름을 달고 부활했다. 세월호 추모를 비방하는 태극기 무리에서 송달규는 어린 시절 그 괴물, 자신의 생부를 발견했다. 정부청사 앞에서 혼자 사열식을 벌인다는 괴물을 쫓던 길이었다. 송달규를 지하철에 뛰어들게 한 건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한 환각 증세이자 시대가 낳은 광기였다. 그와 아버지 모두 괴물이었다.



고통과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들은 달리는 덤프트럭에 뛰어들거나('흔적') 아무 말 없이 종적을 감추거나('물 위의 생'), 한참 뒤에 나타나 기억을 되살린다. '남생이'에서 미화가 나병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떠나면서 쏘아보던 눈빛을 화자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또렷이 간직한다.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도 모자라 미화는 왜 아파트 단지에 유령처럼 나타났을까.

소설에는 끔찍한 광경의 사실적 묘사가 곳곳에 등장한다. 작가는 책장을 덮고 난 독자의 악몽을 유도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고통을 전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악몽을 꾸면서라도 반드시 기억해야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도 1997년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대하소설 '봄날'을 내면서 "지난 10년 동안 나는 내내 5월 그 열흘의 시간을 수없이 다시 체험해야만 했고, 수많은 원혼들과 함께 잠들고 먹고 지내야 했다. 그러는 동안 가끔은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몰라보게 피폐되어가는 듯한 나 자신을 깨닫고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 적은 문장들로 기억의 필연성에 대한 설명을 대신했다. "기억한다는 것은 일종의 윤리적 행위이며, 그 안에 자체만의 윤리적 가치를 안고 있다. 기억은 이미 죽은 이들과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가슴 시리고도 유일한 관계이다." 382쪽. 1만3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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