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국제 누루즈의 날' 아시나요

입력 2017-03-14 07:30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국제 누루즈의 날' 아시나요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이중과세 논란에도 불구하고 양력으로 새해를 맞고도 음력으로 설을 쇠는 풍습은 좋은 면이 있긴 하다. 새해에 새롭게 다짐한 목표나 수칙들을 며칠 만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 작심삼일형 인간들에게는 또다시 신년 결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 얼마 가지 않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면 어떻게 할까? 달력 두 장을 넘기고 석 장째마저 며칠 남지 않은 현실을 보며 속절없이 내년을 기약해야 하나?



이런 의지박약형 인물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치는 '누루즈'(Nowruz)란 풍습이 있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 국한되기는 하나 3천 년 넘게 이어내려온 전통이고 유엔이 정한 어엿한 국제 기념일이다. '누루즈'는 페르시아어로 '새롭다'는 뜻의 '누'(now)와 '날'이란 의미의 '루즈'(ruz)가 합쳐진 말로, 봄의 첫날을 축하하고 자연의 새로움을 기뻐하는 날이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강역이던 발칸반도에서 중동을 지나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약 3억 명이 이날을 전후해 축제를 연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친지끼리 선물을 주고받고,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고, 가무를 즐긴다. 지역에 따라 '노브루즈'(Novruz), '노우루즈'(Nowrouz), '나브루즈'(Navruz), '네브루즈'(Nezruz) 등으로도 부른다.



유네스코가 2009년 누루즈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한 데 이어 유엔은 이듬해 총회에서 이란·인도·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터키·알바니아·마케도니아 등 11개국의 발의로 3월 21일을 '국제 누루즈의 날'(International Day of Nowruz)로 제정했다. 세대와 가족 간의 화해·선린·평화·연대의 가치를 증진하고 문화적 다양성과 공동체 사이의 우정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올해는 춘분(3월 20일)과 하루 차이가 난다.





예로부터 어떤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할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역사적 기원을 거슬러가면 해가 가장 짧아졌다가 커지기 시작하는 날(동지)이나 동지와 춘분의 중간으로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을 기준으로 삼은 사례가 많다. 전자는 크리스마스와 신정에 가깝고 후자는 구정에 가깝다. 음력 설은 당연히 정월 초하루지만, 양력 1월 1일은 고대 로마의 권력자 카이사르가 기원전 45년 율리우스력을 제정할 때 그전까지 로마력으로 1월이던 '마르티우스'(Martius·영어의 March)를 3월로 바꾸는 등 달의 순서를 물리며 자의적으로 정한 것이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사막을 오가야 했던 중동 지역에서는 음력을 중시했다. 달의 지구 공전주기는 약 27.3일인데 지구도 태양 둘레를 돌기 때문에 달의 모양이 변하는 주기(삭망월)는 약 29.5일이다. 1년 12달을 합치면 지구의 공전주기보다 11일 정도 모자라므로 이 일대에서는 오래전부터 태양의 주기와 일치시키려고 2∼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끼워 넣는 태음태양력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정치적·종교적 필요에 의해 윤달을 남용하는 사례가 잦자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636년에 헤지라(성천·聖遷, 서기 622년 7월 16일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근거지를 옮긴 일)를 이슬람력 원년 1월 1일로 선포하며 순수 태음력을 쓰기로 했다. 이슬람력으로 올해는 1438년으로 원년부터 따지면 서기와 43년 차이가 난다. 오는 9월 21일이 이슬람력 1439년 첫날이다. 9월을 뜻하는 라마단(성월·聖月)은 올해 5월 27일부터 6월 25일까지다.

유대인들은 19년에 윤달이 7번 들어가는 메톤 주기법의 태음태양력을 기본으로 하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월절의 첫날(8월 15일)이 월·수·금요일이 되지 않도록 복잡한 법칙을 적용한 유대력을 쓰고 있다. 저녁에 3개의 별이 보이면 하루가 시작된다고 여기고, 추분 후의 음력 초하루를 새해 첫날로 삼는다.

중동 지역 가운데 이집트는 예외적으로 일찍부터 태양력을 썼다. 기원전 18세기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할 때면 해가 뜨는 쪽에서 큰개자리의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가 먼저 떠오르는 것을 관찰하다가 1년을 365일로 하는 달력을 만들었다. 이를 로마가 채용했다가 태양 주기와 차이가 나자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율리우스력을 제정했고, 오차가 누적되자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00으로 나뉘는 해는 평년으로 하되 400으로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삼는 그레고리력을 공포했다.

그러나 서유럽의 가톨릭 세력과 대립하던 동방정교회 지역에서는 교황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아 오랫동안 율리우스력을 써왔다. 이를 토대로 한 러시아력은 그레고리력과 13일 차이가 나므로 러시아혁명이 1917년 3월과 11월에 일어났음에도 각각 2월혁명과 10월혁명이라고 부른다.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지역 정교회는 크리스마스(성탄절)도 12월 25일이 아닌 1월 7일에 기념하고 있다. 부활절은 동서 기독교가 분리되기 전인 서기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한 것이어서 정교회도 똑같이 쇤다. 춘분 후 보름이 지난 뒤의 첫 주일(일요일)이어서 양력과 음력 요소가 섞여 있는데 올해는 4월 16일이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메톤 주기법의 태음태양력을 사용하면서도 계절의 변화나 농사의 시기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하고자 태양의 궤도에 맞춰 1년을 15일 간격으로 나눈 24절기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갑오경장 때 1895년 11월 17일(음력)을 1896년 1월 1일(양력)로 선포하며 태양력을 공식 채택했으나 지금도 음력의 전통이 남아 있어 설, 추석, 단오, 부처님오신날 등의 명절과 일부 기념일은 음력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로써 올 한 해가 정확히 5분의 1(73일)이 지났다. 8번째 국제 누루즈의 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2017년을 맞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면서 전 세계 인류의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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