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말레이 체류 여성 이주자들에게 불똥
베트남·인니 여성 연루 여파로 냉혹한 시선
고용주 착취·학대에다 당국 단속강화 '이중고'
(쿠알라룸푸르 AFP=연합뉴스) 외국 출신 두 이주 여성이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 암살을 실행한 후 말레이 경찰이 미등록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맹독성 신경작용제 'VX'를 이용해 김정남을 독살한 혐의로 기소된 베트남인 도안 티 흐엉(29)과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와 같은 잠재적 범죄자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들 여성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 영상 촬영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으나 말레이 경찰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레이 경찰은 흐엉이 연예 관련 회사에서 일했으며 아이샤는 스파 마사지사라고 발표했다.
현재 말레이에서는 이들이 김정남 암살극에 휘말려 붙잡히자 불안한 생활을 하던 동료 여성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차가운 시선이 관측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교외 프탈링자야에 있는 한 펍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 미카(가명)는 김정남 암살 이후 경찰이 불법 노동자 추적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같은 펍에서 일하는 그의 동료 3명이 최근 경찰에 붙잡혔으며, 경찰이 들이닥친 날 미카는 쉬는 날이어서 간신히 체포를 면했다.
미카는 말레이 장기 취업 비자를 발급해주겠다던 취업 브로커에게 3천600 링깃(약 93만원)을 건넸으나 브로커는 돈을 훔쳐 달아났다.
한 달짜리 단기 비자로 말레이에 체류하는 미카는 비자 만료 전 태국에 건너가 3일을 지내고서 브로커를 통해 다시 1개월 비자를 받아 말레이로 온다.
많은 이주노동자는 정식 근로 계약을 맺고 말레이에서 일한다.
그러나 미카처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30일간 체류할 수 있는 허가를 받고서 계속 2∼3개국을 오가며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웨이트리스, 청소부, 마사지사, 매춘부 등으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상당수가 착취와 학대에 시달리면서 경찰의 수색을 두려워하며 지낸다.
말레이시아 이주노동자 보호 단체 '테나가니타'의 애자일 페르난데스는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취약하다"며 "고용주나 브로커들이 지속적인 감시 아래 노동자
들을 한집에 살도록 강요하거나 이들을 바깥세상과 차단된 곳에 내버려 둔다"고 말했다.
이어 "여권을 압수해 도망갈 수 없게 하거나 이민 당국에 보내버린다고 위협하고, 심지어 강간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동남아시아 경제 규모 3위인 말레이시아는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가 높다. 세계은행(WB)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는 등록한 외국인 이주자 210만명, 미등록 외국인 체류자 100만명 이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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