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 무시했다간 강풍 타고 순식간에 '화르르'

입력 2017-03-12 08:46
'작은 불씨' 무시했다간 강풍 타고 순식간에 '화르르'

75㏊ 소실 강릉 산불 강풍에 재발화·2년 전 화천·삼척도 강풍 타고 119㏊ 잿더미

바람 불면 확산 속도 26배 빨라…산림청 "결국 중요한 것은 예방"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바람이 어찌나 우악스럽게 불던지. 아이고∼불씨가 수백m를 건너뛰는 도깨비불 탓에 번지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니까…"

지난 9∼10일 산림 75㏊를 잿더미로 만든 강원 강릉시 옥계면의 마을 주민 신우승(68) 씨가 혀를 내두르며 던진 말이다.



산불이 난 곳은 속칭 '금단이골'로 13년 전인 2004년 3월 16일 밤에도 대형 산불이 나 화마(火魔)가 임야 95㏊와 가옥 4채를 집어삼켰던 곳이다.

다행히 인명이나 민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주민들은 13년 전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쪽잠을 자며 수시로 산불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였다.

발생한 지 꼬박 하루 만에 꺼진 이번 산불은 당초 1시간여 만에 초동 진화됐으나 강풍으로 낮 12시 13분께 재발화했다.

당시 강릉을 포함한 동해안 6개 시·군에는 건조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던 데다 산불이 난 옥계지역에는 순간 최대풍속 10㎧ 이상의 강풍이 불고 있었다.

옥계 지점의 이날 정시 풍속 추이를 보면 산불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인 오전 10시 13.1㎧, 11시 13.6㎧, 낮 12시 12.7㎧로 강풍이 불었다가 오후 1시 9.8㎧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오후 1시 46분께 14.7㎧의 강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오후 2시가 되자 민가 방향으로 연소가 확대됐다. 이에 산림 당국은 주민 12명을 긴급 대피시키고, 민가로의 연소확대 방어에 주력했다.



진화 헬기 19대가 투입됐지만, 불길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고 불은 산계리를 태우고 저녁부터 북동리와 낙풍리, 현내리로 번져 밤새 바람의 세기에 따라 불길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불은 산 중턱을 타고 민가와 불과 200∼300m 거리까지 내려왔고, 주민들은 "동네 전체가 화목 보일러 옆에 있는 느낌이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산림청 산불통계 연보를 보면 이처럼 강풍에 의해 대형 산불로 이어진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약 2년 전인 2015년 3월 22일 강원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에서는 쓰레기 소각으로 인해 산림 67.3㏊가 불에 탔다. 많은 헬기(13대)가 투입됐음에도 순간 최대풍속 14.3㎧의 강풍이 불어 산불이 야간까지 확산해 피해가 컸다.

이보다 한 달 앞선 그해 2월 8일 강원 삼척시 가곡면 오목리에서 화목 보일러 불똥으로 인해 52㏊가 잿더미로 변했다. 당시 이 지역에는 20㎧ 이상의 강풍이 불었다.



산림청은 이들 산불의 시사점으로 산불 발생 시에는 초기진압이 가장 중요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면 헬기가 부족해 초동진화가 어렵다고 제시했다.

또 산불이 대형이거나 동시다발로 발생하면 상황대응을 위해 진화 헬기 확충이 필요하고, 야간산불에 대응하기 위해 무인드론을 이용한 야간산불 확산 상황을 파악해 진화계획 수립에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바람은 산불 확산 속도를 올리는 것은 물론, 불똥이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飛火) 현상을 일으킨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산불진화 핵심전술은 주불은 진화 헬기를 활용한 공중진화와 화세(火勢)가 약한 잔불은 진화차나 기계화시스템을 활용한 지상 진화다.

특히 산림은 도로시설이 없어 산림 항공기가 산불진화의 주력수단이다.

물을 정확히 투하하기 위해서는 위험하지만, 저공비행을 해야 하는데 맨눈으로 주변 환경 확인이 어려운 야간에는 비행이 제한된다.



15㎧ 이상의 강풍 시에도 운행은 제한적이다.

거의 모든 대형 산불이 강풍을 동반하는 만큼 현장에서는 30㎧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보는데 이 정도 강풍은 태풍급으로 봄철에는 백두대간에서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다.

20∼25㎧의 바람이 불면 헬기 조종이 힘들 정도로 기체가 요동치고, 조종사 의지와 관계없이 헬기가 크게 흔들린다.

1996년 고성, 2005년 양양·낙산사 산불 당시 그랬다.

하지만 이 같은 강풍 속에서도 비행할 수 있는 건 대형이나 초대형 헬기일 경우 가능한 얘기다.

산림청은 현재 초대형 헬기(S-64E) 3대와 주력헬기인 대형헬기(KA-32) 30대를 보유 중이다.

강풍으로 불이 번지는 상황에서 진화인력 투입은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데다 헬기로도 끄지 못하는 불을 사람이 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림청 관계자는 "결국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며 "영농준비를 위한 소각행위나 입산 시 인화성 물질을 소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conany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