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9천만 이집트서 불붙은 삼성-LG '가전 전쟁'

입력 2017-03-13 06:20
수정 2017-03-13 07:20
인구 9천만 이집트서 불붙은 삼성-LG '가전 전쟁'

최신식 대규모 TV공장 가동·투자 경쟁…양사 시장점유율 70%·1조원대 매출

삼성 "LG와 격차 있고 상관 안 해" vs LG "인지도·서비스에서 안 뒤져"

중동 전략적 요충지서 "'건설적 경쟁' 시너지 효과" 분석도

(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동 최대 인구 보유국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이집트에서 치열한 '가전(家電)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구 9천100만명의 이집트에서 두 가전 회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최신식 TV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두 회사의 작년 매출액이 10억달러(약 1조1천500억원)를 넘어서는 등 이집트 제조 산업의 한 축을 이룰 정도다.

특히 TV의 경우 두 회사의 이집트 소비자 점유율이 약 70%에 달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이집트는 2016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2천680억 달러로 중동 지역 5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만성적인 무역 수지 적자 탓에 국가 재정은 갈수록 악화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중동 경제 전문가들은 두 회사의 사업 확장과 선의의 경쟁이 장래 이집트 가전 내수시장 활성화는 물론 수출 증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 이집트 현지 업계와 코트라 등에 따르면 이집트의 주요 수출 생산기지로 떠오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이집트 내 경쟁 구도는 2013년부터 본격화됐다.

LG전자는 1990년 이집트 북부 항구도시 이스마일리아에 생산 법인을 설립해 그다음 해부터 TV 부품 제조를 시작했다.

이집트를 중요 거점 삼아 중동 아프리카에 처음으로 한국 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2001년에는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시장 개척에도 나섰다.

하지만 뒤늦게 진출한 삼성전자 생산법인의 이집트 투자는 공격적이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정국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2012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베니수에프주 와스타시 콤 아부라디(Kom Abu Radi) 공단의 36만6천㎡ 부지에 대규모 TV·모니터 공장을 지었다.

삼성전자 역시 중동·아프리카 지역에 TV 공장을 짓기는 이집트가 처음이었다.

애초 터키와 모로코도 검토 대상 국가였으나 잠재적 소비 시장이 크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수출 기지로서 최적지로 평가받은 이집트가 최종 선정됐다.

이 공장 설립을 계기로 삼성전자와 LG전자와의 경쟁은 더 치열해진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애초 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발표했다가 지금까지 누적 투자액은 1억8천300만 달러에 달했다. 이집트인 직원 수도 현재 1천200여 명이다.

삼성전자는 2013년 7월 가동을 시작해 연간 200만대의 TV와 모니터를 생산하는 중이다.

누적 생산 대수도 700만대를 돌파했고 이집트뿐만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 4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주요 수출국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케냐, 에티오피아, 수단 등이다. 전체 생산량 중 수출 비중은 80% 정도이다.

작년 이집트 생산법인의 매출 규모는 6억달러에 이르렀다. 지금은 TV 부품의 동유럽 수출도 추진하면서 앞으로 매출 규모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이집트 법인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곳은 설비를 가지고 부품까지 직접 제작을 하고 그 부품 중 일부를 수출도 해서 투자의 효율성이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역시 투자 규모에서는 삼성전자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이집트에 삼성전자 공장이 들어선 후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 모양새다. LG전자는 이집트 내수 판매 위주에서 외국 수출로 비중을 대폭 늘리는 등 전략의 변화도 꾀하고 있다.

LG전자는 기존의 이스마일리아 공장에서 철수해 수도 카이로 동부 텐스오브라마단(10th of Ramadan) 지역의 20만㎡ 부지에 새 공장을 지었다. 지금까지 LG전자의 누적 투자액은 1억4천만 달러, 동반 진출한 3개 협력사까지 합하면 1억8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LG 공장 단지 내 근무 인원도 협력사를 포함하면 1천400명에 이른다. 연평균 100만대를 생산했고 지난해 매출 규모는 4억 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기준 이집트 내수 비중은 47%로, 전체 17개 수출국 중 주요 국가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를 포함한 걸프국과 이라크, 요르단 등이 꼽힌다. 올해 수출 비중을 75%까지 늘릴 계획을 세웠다.

또 이 공장에서는 최근 세탁기 시험 생산을 마쳤고 오는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김창한 LG전자 생산법인장은 "지금은 TV만 생산하고 있지만, 세탁기와 냉장고, 에어컨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신제품 출시를 지속해 더욱 사랑받는 브랜드 지위를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양측의 첨예한 신경전도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삼성과 LG 생산·판매 법인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상대 회사에 대한 평가를 극도로 꺼린다.

두 회사측은 모두 "서로 상관 안 하고 있다. 우리가 맡은 일에만 충실히 하려 한다"며 말을 아낀다. 상대 회사의 정보나 계획을 물어보거나 의견을 교환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상대 회사의 정보를 간접 경로를 통해 주로 얻는다고 업계의 한 소식통은 귀띔했다. 사실상 보이지 않는 정보전을 펼치는 셈이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자존심을 건 두 회사 간 서로를 의식하고 견제하는 분위기는 숨길 수 없는 듯했다. 소비자 관련 기관의 가전제품별 소비자점유율이 발표될 때마다 두 회사는 희비가 엇갈릴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삼성전자의 한 소식통은 "예전에 격차가 있을 땐 경쟁의식을 갖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쪽(LG전자)의 수준이 높아져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LG전자 관계자 역시 "삼성이 이집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이 나라는 LG 공화국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비교했을 때 이집트 내에선 브랜드 지명도나 서비스 네트워크 측면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소비자 시장 조사기관인 GFK와 IDC에 따르면 2016년 한해 이집트 소비자 점유율 누적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TV와 휴대전화 품목에서 앞섰지만, 냉장고와 세탁기에서는 LG가 우위를 보였다.

삼성은 TV와 LCD 모니터, 휴대전화 등 5개 품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호텔 TV의 경우 소비자점유율이 무려 91%에 달했다.

LG전자는 2015년 LCD TV 부분에서 33.2%로 1위를 했고 냉장고와 세탁기에서도 최근 4년간 일본 도시바 엘아라비에 이어 2~3위를 유지하며 삼성에 앞섰다고 밝혔다.

LCD TV 품목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집트에서 일본의 도시바와 함께 3강 체제를 형성한 점이 눈에 띈다. 도시바는 이집트 시장에서 세탁기와 냉장고 판매에 유독 강세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의 마케팅과 사회적 활동은 규모 면에서도 두드러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가 이집트에서 운영하는 전문 브랜드숍만 48개에 달하고 삼성 제품을 파는 멀티숍은 1만 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는 이곳에서 지방 초등학교와 의료진에게 컴퓨터와 모니터, 초음파 장비와 시설을 지원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집트에 기여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LG전자 이집트 판매법인장 곽도영 상무는 "올해로 27년째를 맞은 사업 진출로 이집트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확실하게 구축했다"며 "한국산 브랜드의 위상 제고에도 크게 이바지했다"고 강조했다.

곽 상무는 이어 "이집트에는 직영점이 3개, 전속 서비스센터가 16개, 전국 서비스 네트워크가 106개 있다"며 "현지 소비자들 사이에선 서비스가 제일 좋은 편이라는 평가를 듣는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의 경제·산업 담당 외교관은 "삼성과 LG가 전 세계에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이집트에선 선의의 경쟁이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며 "이 경쟁이 이집트의 수출 확대로 이어져 이집트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유정 코트라 카이로 무역관장도 "삼성과 LG는 이집트에서 한국 제품의 위상을 크게 높인 양대 기업"이라며 "이집트 경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집트의 경제 사정이 다소 불투명한 점은 한국 기업의 사업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이집트는 최근 외환 고갈과 이집트 파운드화 가치 하락, 물가 상승, 수입 규제, 국제통화기금(IMF) 지원 등이 겹치면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맞물려 통관과 외환 송금, 달러 현금 조달이 어려운 점도 주요 장애물로 꼽힌다.

실제 이집트 외환보유고는 2011년 시민혁명 전인 360억 달러보다 줄어 현재 250억 달러 안팎에 불과하다.

또 달러 가치 급등으로 생필품인 밀과 설탕의 가격이 급등하고 철강 등 원자재 수입도 전보다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

인구가 매년 급증하고 있고 시장 잠재력이 크지만, 전체 인구의 30~40% 정도는 구매력이 약한 빈민층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

중국 가전제품의 중동·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집중 공략과 물량 공세에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앞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방한한 자리에서 "한국 기업의 우수성은 익히 잘 알고 있으며 이집트 내 기업 활동에 장애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용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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