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도 높은 7시간 공연…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러시아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방대한 분량과 인간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어려운 주제의식으로 읽기에 쉬운 소설은 아니다.
서울 대학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비슷하다. 각 3시간 30분씩인 1, 2부를 합해 장장 7시간에 이르는 긴 공연시간은 소설만큼 관람 도전을 망설이게 한다.
연극은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정동환 분)가 자신이 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을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방탕한 호색한인 아버지 표도르, 연인 그루셴카를 놓고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 큰아들 드미트리, 무신론자이며 냉철한 둘째 아들 이반,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셋째 아들 알료샤, 표도르의 사생아인 하인 스메르쟈코프, 드미트리와 사귀는 사이지만 이반을 사랑하는 여인 카체리나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극 중간중간 등장하며 등장인물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상황을 설명해주는 등 해설자의 역할을 한다. 원작에는 없었던 해설자는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지만, 극을 너무 설명적으로 만드는 점에 불만스런 관객도 있을 법하다.
일흔을 앞둔 정동환은 1인4역을 해내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연극 속 화자인 도스토옙스키와 알료샤의 정신적 지주인 조시마 장로, 예수를 심문하는 대심문관, 이반을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식객(악마)까지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관록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원작에서도 난해한 부분인 '대심문관'의 철학적인 대사는 연극에서도 약 25분간 계속된다. 정동환은 한 관객의 표현을 빌리면 '눈꺼풀에 대사를 붙여놓은 듯'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쏟아내며 긴 시간을 혼자서 이끌어나간다.
드미트리 역의 김태훈과 이반 역의 지현준, 스메르쟈코프 역을 맡은 이기돈 등 이미 연극계에서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유명한 나머지 배우들도 어느 한 명 빠질 것 없이 제 몫을 훌륭하게 해냈다.
나진환 연출의 연출력도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불 꺼진 무대에서 이반과 스메르쟈코프가 대사에 따라 조명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1부 장면이나 2부에서 드미트리와 그루첸카가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마주앉은 이반과 스메르쟈코프가 설전을 벌이는 장면, 섬망증(일종의 정신착란)에 걸린 이반이 뿜어내는 광기 어린 독백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무대 장치는 전반적으로 단순하지만 복잡한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나 일그러진 본성을 표현하는 장치로 거울이 자주 등장한다.
1부와 2부는 독립된 공연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일단 1부를 시작하면 처음 7시간 공연에 대한 부담은 사라지고 2부를 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연극은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하는 도스토옙스키의 독백과 함께 헨델의 라르고 '옴브라 마이 푸'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막을 내린다.
"분노와 증오의 태풍이 당신을 삼키지 않는다면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난한 영혼에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은 행복의 시작이고 구원의 시작이라는 것을요. 사랑으로 충만해지십시오. 용서하고 화해하십시오. 그리하여 행복을 누리십시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인간이 무한히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행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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