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국민동의 생략한 일방통행 외교…동북아평화구상 '물거품'

입력 2017-03-10 16:23
수정 2017-03-10 16:30
[대통령 탄핵] 국민동의 생략한 일방통행 외교…동북아평화구상 '물거품'

여론 수렴 없는 정책 추진에 한중·한일관계 '격랑' 휘말려

대외요인 운 안 따라…"한미공조·대북제재 외교 긍정적" 평가도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파면됨에 따라 지난 4년여 추진해온 대외 정책인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싹을 틔워보지도 못한 채 결국 그 이름만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신뢰외교'에 입각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불신과 대결 구도를 신뢰와 협력의 구도로 바꾸겠다는 기치로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을 제시했다.

한중일간에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이 깊어지는 와중에 정치·안보 분야에서는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는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정치와 경제를 포괄하는 동북아 협력 체제를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시행 4년이 지난 지금 한일·한중 관계를 냉정히 평가하면 이 구상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때 '밀월'로 평가됐던 한중관계는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둘러싼 갈등으로 수교 25년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고,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듯 했던 한일관계는 주한 일본대사 소환 2개월이 지난 데서 보듯 다시 악화했다.

물론 대외적인 요인이 따라주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강경 우익 성향의 일본 아베 정권(2012년 12월 출범)이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부터 총리·부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를 필두로 한 역사 수정주의 행보를 이어가면서 한일관계는 '첫 단추'부터 어긋났고 북한 김정은 정권이 광란의 핵·미사일 질주를 하는 통에 북한을 버리지 못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신뢰에 금이 갔다.

그러나 외부 요인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무엇보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이라는 '간판'은 걸었지만, 그것을 흔들림 없는 외교 원칙으로 세우지 못한 채 즉흥적인 정책을 추진, 한중·한일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즉흥적 외교는 국민의 총의를 모으는 과정을 생략한 채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2015년 12월 28일 도출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일본 정부 예산을 통한 재단 출연 등에서 엄연한 성과를 거뒀지만, 피해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사실상 생략한 채 한일관계 개선만 앞세운 '정치 합의'였다는 한계를 노출했다.

결국 합의는 한국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주한 일본 공관 앞 소녀상 문제로 일본의 역공을 받게 되면서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듯한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 편지를 쓸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과 소녀상 갈등을 둘러싼 일본의 강경한 태도로 피해자와 한국민의 응어리는 해소되지 않은 채 회복되는 듯싶던 한일관계도 작년 말 부산 소녀상 설치를 계기로 다시 악화하는 최악의 상황이 됐다.

2015년 9월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진영 지도자로는 거의 유일하게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올라가면서까지 중시했던 대 중국 관계도 사드라는 벽을 넘지 못한 채 파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드의 안보상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들이 많고 중국의 비이성적인 사드 보복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중국 최고지도자(시진핑 국가주석)가 3차례 반대 의사를 표명한 사드 배치를 작년 전격 결정하면서 중국의 보복을 막기 위한 섬세한 외교와 양분된 국민 의견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다.

사드 관련 '3No'(요청·협의·결정 없음) 입장을 견지하다가 전격적으로 배치 결정을 발표한 배경에는 북한 핵실험 직후 중국의 미온적 태도로 한중 정상간 소통이 이뤄지지 못한 데 대한 박 전 대통령의 분노가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외교의 핵심 과제인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명암이 엇갈린다.

결과론적으로 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북한이 2차례 핵실험을 단행하고 핵무기 실전배치 직전 단계까지 핵 능력을 고도화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 북핵 외교에 합격점을 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북한이 4,5차 핵실험을 계기로 대북 제재·압박 강화를 일관되게 추진하며 비군사적 제재로는 유엔 역사상 최고 강도로 평가되는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와 2321호가 도출되는 데 우리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전략적 인내 정책을 펴고 있던 미국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임기 막판 뒤늦게나마 대북 제재와 압박에 급페달을 밟은 것은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드라이브가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 전 대통령 집권기 미국의 오바마-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한 한미공조 체제를 유지한 것은 우리 안보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동안 균형감을 유지하려 애쓰다 정권 막판 북핵 위기 심화 속에 미국에 '올인'하며 미국의 대중국 견제 구도에 점점 더 편입되는 듯한 한국 외교의 현 상황에 대해 훗날 역사의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대 중견국 외교 측면에서 한국 주도로 2013년 만든 5개국 협의체인 믹타(MIKTA, 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터키·호주)가 외교장관급에서 빈번하게 만나며 정착한 것은 박근혜 외교의 성과로 평가된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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