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바람과 수백m 건너뛰는 도깨비불 탓에 밤새 떨어"

입력 2017-03-10 11:34
"거센 바람과 수백m 건너뛰는 도깨비불 탓에 밤새 떨어"

강릉산불, 13년 전과 발화 시기, 위치, 밤새 확산 방향 '판박이'

(강릉=연합뉴스) 이재현·박영서 기자 = "13년 전에도 바람이 워낙 우악스럽게 불어 95㏊의 산림을 삽시간에 태웠는데…당시 악몽이 되살아는 듯해 밤새 노심초사했습니다."

강원 강릉 옥계에서 발생한 산불이 이틀째 이어지면서 마을 주민들은 민가 4채를 집어삼킨 13년 전 산불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산불 이틀째인 10일 오전 10시 30분 꼬박 하루 만에 75㏊의 산림을 태우고 완전 진화됨에 따라 주민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9일 오전 옥계리 산계리 인근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은 산계리를 태우고 저녁부터 북동리와 낙풍리, 현내리로 번졌다.

이 때문에 동네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민가로 불이 넘어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당시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14.6m였고, 밤에도 평균 초속 6∼7m의 강풍이 쉬지 않고 불었다.

산계 1리 주민 10여 명은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최초 발화 지점에서 3㎞ 떨어진 마을회관 뒷산 쪽으로 번지자 집을 비우고 한때 대피하기도 했다.

13년 전 산불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산계 1리 주민 신우승(68) 씨는 "바람이 어찌나 우악스럽게 불던지. 아이고∼불씨가 수백m를 건너뛰는 도깨비불 탓에 확산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며 "13년 전 큰 산불 났을 때 생각이나 겁이 다 나더라니까"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어 신 씨는 "당시에는 40∼50년생 아름드리나무가 빼곡히 들어 차 있었는데 모두 타고 지금은 새로 조림을 해서 그나마 10년생 미만의 작은 나무들뿐"이라며 "그때와 비교하면 이번 바람은 다소 약해 그나마 피해가 작은 듯하다"고 말했다.



불은 산 중턱을 타고 민가와 불과 200∼300m 거리까지 내려왔지만, 진화 당국이 저지선을 구축한 덕에 민가 피해는 없어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불이 난 속칭 '금단이골'은 13년 전인 2004년 3월 16일 밤에도 큰 산불이 났다.

당시 불은 15시간여 만에 완전진화 됐지만, 임야 95㏊가 소실되고 가옥 4채가 불에 타 1명의 이재민을 났다.

또 116가구 305명의 주민이 마을회관 등으로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밤사이 초속 15m의 강풍이 불었다. 불은 강풍을 타고 북동쪽으로 번져 옥계면 현내리 라파즈 한라 시멘트 공장까지 위협하는 등 기세가 대단했다.

이번 강릉산불도 13년 전 만큼의 강풍은 아니었지만, 초속 6∼7m의 강풍이 밤사이 불어 북동쪽으로 번졌다.

이 때문에 북동리와 낙풍리, 현내리 주민들도 긴장감 속에 밤잠을 설쳤다.

이명수(61) 낙풍2리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70∼80대 노인인 탓에 초저녁부터 대피할 수 있게끔 만반의 준비를 해달라. 마을회관이나 마을 안쪽 집들로 피신할 수 있는 준비를 해달라"고 방송했다.

이 이장은 "나도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아침에 마지막으로 불을 봤을 때 민가와 거리가 불과 200∼300m에 불과했다"며 "저지선이 없었다면 큰일 날뻔했다"고 말했다.

낙풍2리 주민 김모(49·여) 씨는 "불이 갑자기 넘어와서 정말 무서웠다. 동네 전체가 화목 보일러 옆에 있는 느낌이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주민들 모두 뜬눈으로 지새우고, 특히 노인분들이 많이 놀랐다"며 "이제야 하늘이 보이는 것을 보니 많이 진화된듯하다"고 안도했다.

임재영(67) 현



내3리 이장도 "산과 가까운 민가는 수백m 앞까지 불이 내려왔다"며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는 전문 진화인력 외에는 접근하지도 못할 정도로 긴박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13년 전 대형산불을 겪었던 주민들은 이번 산불이 시기나 발화 위치는 거의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때 당시에는 바람이 너무 강해 마을까지 내려왔고 이번에는 바람이 잦아든 덕에 피해가 없었으며, 대응진화도 잘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임 이장은 "13년 전에는 짐을 챙길 새도 없이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발만 동동 굴렀다"며 "시간상으로는 거의 20시간 넘도록 탔지만, 어제는 밤부터 바람이 잦아든 덕에 그나마 이전 산불보다 피해가 덜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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