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누가 더 악랄한가?…안방극장 점령한 살인마들
엄기준·김재욱·최태준·김병철 등 살인마 역으로 화제
갈수록 심해지는 드라마의 폭력성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살인마들이 안방을 점령했다.
주로 영화에서 보던 살인마들이 올해 들어 잇따라 드라마에 등장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SBS TV '피고인'의 엄기준, OCN '보이스'의 김재욱, MBC TV '미씽 나인'의 최태준, tvN '도깨비'의 김병철이 섬뜩한 연기로 모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과거 드라마에서는 살인마는 대개 이름없는 배우가 맡거나 단역처럼 비중이 작았다. 선한 주인공들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살인마는 이따금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기파 배우와 청춘스타가 살인마를 맡으면서 자연히 극중 비중이 주연급으로 올라섰다.
◇ 재벌 2세 사이코패스·탐욕의 화신들
'피고인'의 엄기준과 '보이스'의 김재욱은 사이코패스를 연기한다. 두 캐릭터 모두 재벌 2세라는 공통점이 있다.
분노조절장애는 기본이고,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여긴다. 심지어 혈육도 죽인다.
엄기준이 연기하는 차민호는 쌍둥이 친형인 차선호를 자기 손으로 죽였다. 그러니 거칠 게 없다. 아버지가 늘 형만 편애했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그는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자라면 누구든 바로 죽인다.
김재욱이 연기하는 모태구는 천성적으로 잔혹한 기질을 타고난 정신이상자에 권력형 살인마다. 어린 시절엔 애완동물, 커서는 사람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다.
지난 9일 막을 내린 '미씽 나인'의 최태준과 지난 1월 끝난 '도깨비'의 김병철은 이기심이 극대화된 탐욕의 화신을 연기했다.
'미씽 나인'의 아이돌 스타 최태호와 '도깨비'의 고려 간신 박중헌은 나 혼자 잘 살겠다는 심리를 가진 전형적인 이기주의자다.
◇ 섬뜩한 연기·광기의 대결
이들 배우는 저마다 광기 어린 연기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잔인함과 폭력성, 정신이상 정도가 극점을 찍는 배역이지만, 주저하지 않고 내달렸다.
특히 엄기준과 김재욱은 남부러울 게 없는 멋진 재벌 2세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죄의식과 도덕성은 일평생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인물을 섬뜩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재욱은 한술 더 떠 살인을 즐거운 놀이로 생각하는 인물을 맡아 소름 끼치게 한다.
이들과 달리 최태준이 연기한 최태호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얼결에 살인을 저지르면서 이후 살인마의 길을 걷게 된 인물. 최태준은 인기 절정의 시점에서 살인을 저지른 스타의 혼란과 자기 부정, 죄를 덮기 위해 또다른 죄를 저지르는 자의 광기를 그려냈다.
김병철은 네 배우 중 가장 비중이 적은 배역이었으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고려 간신에서 구천을 떠도는 악귀가 된 박중헌의 모습은 으스스한 의상, 분장, CG가 어우러지면서 시선을 붙들었다.
세 치 혀를 놀려 어린 임금을 조정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았던 박중헌은 악귀가 돼서는 날개를 달고 활보했다.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김병철은 이 역할로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 과도한 폭력성 지적도
이들 살인마 캐릭터가 안방극장에 등장시키기에는 너무 과하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나치게 폭력적인 데다, 비중이 큰 배역이라 쉬지 않고 잔인한 범죄가 화면에 등장한다.
결국 '보이스'는 과도한 폭력성이 문제가 돼 중간에 시청등급이 '15세 관람가'에서 '19세 관람가'로 상향 조정됐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TV 드라마에서 극악무도하고 악랄한 캐릭터가 활개 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으론 폭력적인 시대가 투영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시청자를 둘러싼 현실은 미치광이 살인마 하나가 등장하는 드라마보다 더 위험하고 폭력적이라는 항변이다.
'보이스' 관계자는 "살인이라는 게 극단적이긴 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재벌 2세나 유명인, 권력자의 탈선과 범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지 않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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