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대만전마저 답답한 경기력…밑천 드러낸 한국

입력 2017-03-09 23:25
[WBC] 대만전마저 답답한 경기력…밑천 드러낸 한국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WBC 1승 2패로 마무리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이스라엘이 한국을 2-1로 꺾자 "기적 중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썼다.

한국이 마이너리거들이 주축이 된 이스라엘에 전력상 우위에 있다는 것을 전제한 표현이었다.

2006년 제1회 WBC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등 한국 야구의 눈부신 성취를 떠올리면 이런 식의 평가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번 WBC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은 보잘것없는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김인식(70)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WBC 서울라운드 A조 대만과 최종전(3차전)에서 연장 10회에 터진 양의지의 결승 희생플라이, 대타 김태균의 투런 홈런에 힘입어 11-8로 승리했다.

앞서 이스라엘, 네덜란드전에서 19이닝 동안 단 1득점에 그쳤던 한국은 뒤늦게 타선이 폭발하며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했다.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대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한국은 안방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번 WBC를 1승 2패로 마무리하고 꼴찌만은 면했다.

겨우내 야구를 그리워하며 WBC를 기대감 있게 지켜본 팬들에게는 참혹한 결과다.

한국은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1차전 상대는 한 수 아래의 전력으로 꼽힌 이스라엘이었다.

낙승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한국은 연장 승부 끝에 1-2로 무릎을 꿇었다.

이스라엘전 필승을 전제로 1라운드 전략을 짠 한국은 이 패배로 모든 구상이 꼬이고 말았다.

물론 경기야 질 수도 있지만, 내용이 좋지 않았다. 투수진은 볼넷을 남발했고, 타선은 답답한 공격을 이어갔다.

최악의 출발을 한 대표팀의 두 번째 상대는 명실상부 A조 최강인 네덜란드였다.

한국은 네덜란드를 상대로 공격, 수비, 주루 전 부문에 걸쳐 한 수 아래의 전력을 노출하며 0-5로 완패했다.



연이은 참패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핵심 선수들의 부진이 치명적이었다.

2연패를 당하는 동안 4번 타자였던 이대호는 9타수 1안타로 부진했다.

3번 김태균은 2경기 내내 침묵했고 중심 타선에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됐던 최형우는 타격감을 찾지 못해 네덜란드전 후반 대타로 단 한 타석에 섰을 뿐이었다.

투수진도 마찬가지였다. 마무리 오승환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평균 구속보다 5㎞가량 떨어진 모습이었다.

구속이 나오지 않으니 자신감이 떨어져 도망가는 피칭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한국은 이날 대만전에서도 양현종(3이닝 3실점), 심창민(1이닝 2실점), 차우찬(2이닝 2실점), 장시환(1이닝 1실점) 등 거의 나오는 투수마다 실점했다.

타선도 1회와 2회 잠깐 반짝했을 뿐 이후로는 소강상태에 빠지며 대만의 추격을 허용했다.

한국은 9회말 수비 때 무사 2루의 위기를 맞았으나 구원 등판한 오승환의 위력적인 투구로 끝내기 패배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연장 10회초에는 대타 김태균이 쐐기 투런포를 쏘아 올렸다.

특급 선수 몇 명에 의해 좌우된 경기력은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사실 한국은 야구에서만큼은 미국, 일본과도 해볼 만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이 어쩌면 자만심이 되었던 건 아닌지 이제는 반성해볼 때다.

한국 야구의 기반이 여전히 약하며, 그 약한 기반 안에서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물렀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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