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텅빈 주머니와 대출 벽 허문 '5천원의 기적'

입력 2017-03-09 07:00
가난한 이들의 텅빈 주머니와 대출 벽 허문 '5천원의 기적'

광주 동구 '신나는 자활공제협동조합'…출범 6년 만에 386건의 대출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김소영(35·가명)씨는 광주 동구자활센터 일자리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족과 떨어져 친척 집을 전전하다, 할머니 댁에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암 투병하다 김씨가 17살이 되던 해에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엄마의 모습이 남아 있으면 자식들에게 상처가 된다"며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김씨에게는 아픔이었다.

다시는 그런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2009년부터 자활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 김씨는 아버지, 남동생과 가족사진 하나 찍어보려고 매달 5천원씩 자활공제회에 출자했다.

마침내 소액대출을 받을 자격이 주어졌고, 가족사진을 찍을 마음에 들떠 있던 터에 김씨의 아버지가 일하러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가 버리고 아버지가 환갑이 다 돼 어떻게든 가족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또다시 당뇨합병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됐다.

아버지마저 사진 한 장 없이 보낼까 봐 가슴 졸이던 김씨는 지난 설 명절 광주 동구 '신나는 자활공제협동조합'에서 대출받아 그토록 소원하던 가족사진을 찍었다.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당일,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나아 보일 때 찍어두고 싶으시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영정사진을 찍자 김씨의 두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씨와 같은 가난한 이들이 모여 출자해 설립한 광주 동구 '신나는 자활공제협동조합'이 서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신나는 자활조합은 141명이 출자해 2011년 11월에 설립됐다.

조합에 출자한 이들 중 대부분은 광주 동구자활센터에 소속돼 배송사업단, 청소사업단, 음식점 등 각종 일자리 사업단 참여자다.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한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매달 5천원씩 꼬박꼬박 모아 자활공제조합을 키웠다.

가난한 이들의 정성이 모여 조합은 설립 6년만인 올해 출자자 213명, 출자금 2억6천만원의 어엿한 자활금융조합으로 성장했다.

자활공제조합 출범 초기에는 "살기 팍팍한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것 아니냐" 등의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6년간 조합의 386건 대출 중 2건만 연체됐을 뿐, 대출사례의 99.48%가 원금과 이자를 모두 상환해 믿음에 보답했다.

조합원에게는 1% 저리로 일반인에게는 3% 이자로 대출해주는 덕분에 일반 사금융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겨울에 연탄을 구할 길 없는 독거노인이 조합에서 50만원을 대출받아 따뜻한 겨울을 난 사연, 인슐린 살 돈이 떨어져 다리를 절단할 위기에 처한 당뇨 환자가 소액대출을 받아 병원비를 낸 사례 등이 잇따르고 있다.

광주 동구의 신나는 자활공제협동조합과 함께 네트워크망을 조성한 전국 자활공제협동조합은 전국에 41개에 이르고 조합원은 8천명이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신나는 자활공제협동조합 관계자는 "가난한 이들의 '텅 빈 주머니'와 '대출의 벽'을 허물고자 주민들이 한푼 두푼 출자하여 자금을 만들고 서로 돕기 위해 조합을 설립했다"며 "서로 나누며 가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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