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가 무역 부정행위?…'우회덤핑' 여부가 관건
반덤핑 규제 피하려 일부 공정만 옮겼다면 美국내법 위반
삼성·LG, 반덤핑관세 부과 전에 생산기지 중국→베트남 이전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김연숙 기자 =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콕 찍어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 피터 나바로 미국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의 발언은 '우회덤핑'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수입규제를 받은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장 이전 등의 전략을 짜는 것은 국제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미국 국내법으로 제재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기업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뜩이나 통상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실명을 거론 당한 기업으로서는 우회덤핑이 아닌 정당한 경영행위였다고 항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무역협회 이동복 통상연구실장은 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소싱(구매처)을 전환하는 전략을 짤 수 있다"며 "이를 불공정 무역행위로 보는 것은 자국 중심적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반덤핑 규제를 받은 경우 기업으로서는 수출가격을 올리거나 국내 판매가격을 낮추는 등 여러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며 "공장 이전은 안 되고 수출가격만 올리라고 강요하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나바로 위원장의 말을 허투루 듣긴 어렵다.
미국은 국내법으로 우회덤핑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회덤핑은 반덤핑이나 상계관세를 부과받은 기업이 이를 회피하고자 완제품 대신 부품만 수출해 수입국 내에서 조립하거나 제3국에서 조립해 수출하는 관행을 말한다.
예컨대 국내 기업이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은 한국이나 중국 대신 베트남으로 아예 공장을 이전했다면 우회덤핑에 해당하지 않지만, 소규모 공정을 옮겨 사실상 조립만 그곳에서 한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은 1988년 우회덤핑 방지규정을 국내 법제화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우회덤핑을 규제할지 아직 논의 중이다.
산업연구원 고준성 선임연구위원은 "중요한 것은 제3국으로 옮긴 우리 제품의 공정이 사소한 것에 해당하는지 여부"라면서 "만약 반덤핑 관세를 피하려고 베트남에서 간단한 조립 정도만 했다면 그 제품은 '메이드 인 베트남'이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점에서 나바로 위원장의 발언은 우회덤핑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해야 한다"며 "기업에서도 공장 이전 전에 우회덤핑에 관한 미국법을 이미 검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장 전체를 옮겼다면 가격 결정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건 기업의 경영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나바로 위원장 발언의 배경을 파악하는 한편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기본적으로 미국 가전업체인 월풀의 이익을 대변하는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보지만, 미국 무역 수장의 발언이라 후폭풍을 우려해 공식적인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다만 그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삼성·LG전자는 미국 판매용 세탁기의 생산기지를 지난해 중국에서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로 옮겼다. 이는 미국이 지난 1월 중국에서 생산한 이들 업체의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확정하기 전이었다.
두 업체는 글로벌 환경 변화와 자사 필요에 따라 생산기지를 전체적으로 조정하는 공급 체인망을 갖고 있다.
결국 생산기지 이전은 관세와 환율, 원자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기업의 전략적인 선택이지, 우회덤핑을 노린 꼼수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기존 중국에서 이뤄지던 세탁기 제조 공정을 그대로 동남아로 옮겼을 뿐 공정의 일부를 떼어낸 것이 아니라서 미국법 위반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들 기업은 제3국에서 부품을 받아 중국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했고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긴 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공정을 계속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생산기지 이전은 우회덤핑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가격 경쟁력을 높여 이익을 얻기 위한 경영행위를 무역 부정행위로 보는 것은 확대해석"이라는 말했다.
하지만 부품 생산부터 조립까지 모두 한 지역에서 하는 것은 아닌 만큼 우회덤핑 여부는 결국 미국의 판단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베트남 등 우리 기업이 진출한 지역을 대상으로 새롭게 반덤핑 조사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동복 통상연구실장은 "우리 기업으로서는 미국이 실질적으로 조치에 나설지를 예의주시하면서 이에 맞게 대응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un@yna.co.kr,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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