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극' 치닫는 北-말레이 김정남 갈등…단교 '일보직전'(종합)

입력 2017-03-07 16:04
수정 2017-03-07 17:03
'인질극' 치닫는 北-말레이 김정남 갈등…단교 '일보직전'(종합)

北 억류조치에 말레이도 맞불…벼랑끝 대치에 치킨게임 양상

(서울·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효정·홍국기 기자 황철환 특파원 = 김정남 암살사건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서로 상대국민을 사실상 인질로 잡고 벼랑끝 대치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7일 오전 자국 내 말레이시아 국민을 출국 금지한다고 발표하자 불과 수시간 만에 말레이시아 역시 자국의 북한인 전체에 대해 "나갈 수 없다"고 못박았다. 북한의 강력 펀치에 말레이시아가 그보다 더 크게 맞받아친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우선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의례국은 7일 해당 기관의 요청에 따라 (중략) 조선(북한) 경내에 있는 말레이시아 공민들의 출국을 임시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을 주조(주북한) 말레이시아대사관에 통보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북한에 체류하는 말레이시아인 11명을 사실상 억류하면서 말레이시아 정부를 상대로 '인질극'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아마드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가 자국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과 관계자의 출국을 전격 금지했다고 밝힘으로써 북한에 '등가'의 조처를 하는 듯 했으나, 다시 나집 라작 총리가 나서 말레이 내 모든 북한인의 출금 금지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현지 북한대사관에는 이런 저런 명목으로 공식직원이 28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말레이시아 거주 북한 주민은 1천여명에 달한다.

이런 단순한 체류 국민 숫자만 보더라도 북한이 말레이보다 훨씬 불리해보인다.

특히 말레이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은 그동안 양국 간에 맺어진 비자면제협정으로 들어온 외화벌이 일꾼들인데다, 잇따른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이 말레이를 근거지 삼아 외화벌이는 물론 동남아 외교의 전진기지로 삼아왔다는 점에서 대치가 길어지면 북한에 작지 않은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과 말레이는 지난달 13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수사과정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다가, 서로 강철 주(駐) 말레이시아 북한대사와 모하맛 니잔 주북 말레이시아 대사를 맞추방하면서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북한이 말레이 국민에 대한 출국금지라는 '과격한' 조치에 먼저 나선 데는 김정남 암살의 파장이 국제사회에 더 번지기 전에 무마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무리수가 되더라도 초강수로 상대를 제압해 '진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개성공단 문제로 우리 국민에게도 비슷한 조치를 한 사례가 있다. 2009년 '북한 체제 비판' 등의 이유를 내세워 현대아산 근로자 1명을 136일 동안 개성공단에 억류한 바 있다.

그러나 특정 국가와의 갈등을 빙자해 해당국 국민을 사실상 억류하는 행위는 외교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일인데다 법적 근거도 빈약하는 비판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북한은 말레이에 있는 자국 외교관과 국민의 '안전 담보'를 말레이 국민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와 관련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남 암살' 사건이라는 실체가 드러날까봐 그와 관련해선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아 비난을 자초했다.

전례로 볼 때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로 보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말레이로부터 같은 종류의 공격을 받았다.

말레이의 최고지도자인 나집 총리가 "혐오스러운 조치"라고 비난하면서, 자국 주재 북한 공관원은 물론 북한 국민까지 모두 억류조치를 한 것이다.

북한의 강공에 더 큰 '초강공'으로 맞받아친 것이다.

말레이 당국은 자국의 심장부라고 할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이 맹독성 화학무기에 쓰이는 VX 공격을 받아 사망한데 대해 명백한 진상 규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방해하는 북한의 행위를 주권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에는 이'로 맞서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북한 역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한 배후를 인정하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매장'당할 수 있어 말레이의 이런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사건 규명을 하려는 말레이와 진실을 덮으려는 북한이 팽팽하게 맞선 형국이어서 접점 찾기는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에 따라 말레이 현지에선 이제 양국 간에 '단교' 조치만 남은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말레이 당국 역시 '작심'의 기색이 역력하다. 말레이 경찰은 현재 쿠알라룸푸르 시내 북한대사관 정문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북한 외교공관을 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파 아만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현지 일간지 기고문에서 "북한과의 국교 단절이나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관 폐쇄는 최후의 조치로 남겨질 것"이라고 밝혀, 향후 추이에 따라 선택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익명을 요구한 아세안 국가 외교관은 "이미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관계는 돌이킬수 없이 훼손됐고 이대로라면 단교로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서 "몇 차례 상황을 봉합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런 상황까지 간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말레이 내 여론은 더 차갑다. 말레이와 북한 간 연간 교역규모가 2천300만 링깃(59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북한이 '생떼' 주장을 하며 인질극까지 벌이는 걸 감내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말레이 당국이 20일 내각회의를 열어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관의 폐쇄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회의에서 북한대사관 폐쇄가 결정되면 공식적으로 단교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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