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데뷔전 현장에서 본 박성현의 'A급' 경쟁력

입력 2017-03-07 03:03
LPGA 데뷔전 현장에서 본 박성현의 'A급' 경쟁력

장타력·버디 사냥 능력·정신력은 '특급'…쇼트게임은 '숙제'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박성현(24)은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가 주목하는 특급 신인이다.



LPGA투어는 홈페이지를 통해 박성현의 투어 합류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신인'이라는 꼬리표는 사실 박성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LPGA투어에 입회할 때 이미 세계랭킹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석권했던 박성현이다.

게다가 작년에 비회원으로 출전했던 7차례 LPGA투어 대회에서 우승은 없었지만, 워낙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LPGA투어 규정으로 보면 분명한 신인이다.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장 탄종 코스(파72)에서 열린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LPGA투어 회원으로 공식 데뷔전을 치른 박성현은 단독 3위에 올라 '슈퍼루키'로서 이름값을 해냈다.

성적으로 보면 성공적인 데뷔전이다.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장 데뷔전 현장에서 관찰한 박성현의 경쟁력은 '언제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A급'이었다.

무엇보다 정신력과 장타력, 그리고 버디 사냥 능력은 손색이 없었다.

박성현은 이번이 9번째 LPGA투어 대회 출전이었다.

적지 않은 출전 경험이다.

다만 앞선 8차례 출전은 비회원 신분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비회원 신분 초청 선수 때와는 심리적 부담감이 더하다.

'밑져도 본전'인 초청 선수 때와 달리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 더구나 박성현은 큰 기대 속에 연간 20억 원이 넘는 후원 계약까지 따낸 터라 부담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박성현은 1라운드 1번홀 티샷 때 "그렇게 긴장해보긴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그만큼 자신도 데뷔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데뷔전에서 부담감을 더했던 것은 조 편성이었다. 대개 신인은 갤러리가 몰리는 정상급 선수와 조 편성을 해주지 않는다.

대회 주최 측은 1라운드에서 박성현을 에리야 쭈타누깐(태국), 전인지(23)와 묶었다. 쭈타누깐은 작년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 전인지는 신인왕과 최저타수상을 탔다. 둘은 지난해 LPGA투어 주요 개인 타이틀 수상자다.

박성현은 1라운드부터 자연스럽게 중계방송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황금 시간대에 티타임을 받았다.

전날 성적에 따라 동반 선수가 달라지는 2, 3, 4라운드에서도 박성현은 특급 선수들을 상대했다.

박성현이 나흘 동안 동반 플레이를 펼친 선수는 쭈타누깐, 전인지 말고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한국 이름 고보경), 미국 교포 미셸 위(한국 이름 위성미) 등이다. 세계랭킹 1, 2위에다 모두 LPGA투어에서 한가락 하는 선수들이다. 기량도 뛰어날 뿐 아니라 개성과 카리스마가 강하다.

이런 선수들과 동반 플레이에서 나흘 동안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쳤다는 사실은 신인답지 않은 배짱과 자존감을 지녔다는 얘기다.

박성현의 장기인 장타력도 빛났다.

기록으로 나타난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264.75야드다. 국내에서처럼 압도적인 비거리는 아니다. 평균 279.5야드를 날린 김세영(24)이나 275.63야드를 기록한 페테르센, 272.13야드를 때린 렉시 톰프슨(미국)보다는 한참 뒤졌다.

하지만 실제 경기 때 박성현은 필요할 때마다 장타를 펑펑 날렸다.

최종 라운드 8번홀(파5)에서는 3번 우드 티샷에 이어 4번 아이언으로 핀을 곧장 노리는 과감한 샷으로 5m 이글 기회를 만들었다.

박성현은 8번홀에서 한 번도 드라이버를 친 적이 없지만 세 번은 아이언으로 투온에 성공했다.

웬만한 선수들은 세 번 만에 그린에 올리기도 버거운 559야드짜리 16번홀(파5)에서도 박성현은 샷 두 번으로 그린을 공략했다.

박성현은 그린 적중률이 70.8%에 그쳤다. 하지만 기록에 숨겨진 진실이 따로 있다. 그는 핀 위치와 상관없이 대부분 그린을 공략할 때 핀을 직접 겨냥했다.

박성현은 "먼 거리라면 몰라도 쇼트 아이언이나 웨지를 잡고 치면서 그린 한가운데를 겨냥하기는 좀 그렇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런 공격적인 플레이는 그린 적중률을 떨어뜨리지만 잘 맞아 떨어지면 버디 확률은 한결 높아진다.

박성현은 이번 대회에서 나흘 동안 버디 25개를 뽑아냈다. 우승자 박인비(29)보다 2개가 더 많다.

쭈타누깐과 함께 최다 버디를 작성했다.

박성현은 국내에서 뛸 때도 버디 사냥 능력은 최고였다. KLPGA투어 사상 처음으로 라운드당 평균 버디 4개의 벽을 훌쩍 넘겼다. 그는 지난해 18홀당 버디 4.67개를 뽑아냈다.

LPGA 투어에서도 라운드당 4개 이상 버디를 뽑아낸 선수는 작년에 쭈타누깐, 리디아 고, 전인지, 김세영 등 4명뿐이다.

데뷔전에서 박성현은 라운드당 6.25개꼴로 버디를 잡아냈다.

박성현은 그린 플레이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본인도 "이번 대회에서 퍼팅이 잘 된 덕에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퍼팅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라운드마다 버디를 6개 넘게 잡아내려면 퍼팅이 따라 주지 않으면 어렵다.

5∼7m 거리 버디 퍼트를 적지 않게 넣었다.

하지만 숙제도 남겼다.

나흘 내내 박성현은 경기가 끝나면 쇼트게임 타령을 늘어놨다. 함께 경기를 치른 다른 선수들의 쇼트게임 실력이 부럽다고 했다. 동반 선수들에 비하면 자신의 쇼트게임 능력은 절반밖에 안 된다고 한탄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박성현은 그린을 놓쳤을 때 그린에 볼을 올리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퍼트 한 번으로 마무리할 만큼 가깝게 붙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핀 위치가 까다로울 때는 가깝게 붙이려는 시도조차 않는 경우도 있었다.

투어에서 가장 그린 적중률이 높은 박인비는 "모든 홀을 다 온그린하면 쇼트게임이 필요 없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쇼트게임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정상급 선수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인 셈이다.

박성현은 어이없는 3퍼트를 두 번 이상 저질렀다. 첫 퍼트를 너무 길게 치거나 너무 짧게 친 결과였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다. 그린 스피드와 경사를 읽는 데 실패한 것이다.

다행히 결정적인 승부처는 아니었지만 이런 실수가 자주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교훈을 챙겼다.

아울러 박성현이 데뷔전에서 다소 플레이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은 점도 염두에 둬야 할 사안이다.

박성현은 국내에서도 플레이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다.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장타를 치는 그는 두 번째 샷을 한참 기다렸다 쳤다.

동반 선수들이 샷을 하고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동반 선수 2명이 샷을 마친 다음에야 볼의 라이를 파악하고 공략 방법을 결정하고 클럽을 선택하곤 했다. 그래서 플레이가 늦다는 눈총을 감수해야 했다.

LPGA투어는 늑장 플레이에 대한 기준이 더 까다롭고 벌도 엄하다. 더구나 박성현은 신인이다. 신인 길들이기가 없지 않아 있다고 한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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