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비수' 서울 이상호 "마음속으로만 기뻐했죠"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친정팀이라서 세리머니는 자제했습니다. 마음속으로만 기뻐했죠."
이적생이 득점포를 가동하면 소속팀 서포터스에는 '영웅'이지만 친정팀 서포터스에는 '역적'이 되기 마련이다.
수원 삼성에서 8시즌을 보내다가 올해 FC서울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베테랑 미드필더 이상호(30)의 처지가 딱 그렇다.
이상호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2017 K리그 클래식 1라운드 '슈퍼매치'에서 팀이 0-1로 끌려가던 후반 17분 동점골을 터트리며 서울의 1-1 무승부를 끌어냈다.
이날 서울과 수원의 경기는 K리그 통산 80번째 슈퍼매치여서 팬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더불어 이날 경기는 '이상호 더비'로도 불렸다.
지난 시즌까지 수원의 핵심 공격자원으로 활약하다가 '라이벌' 서울로 이적한 이상호 때문이었다.
이상호의 이적은 서울과 수원 팬들 모두에게 깜짝 놀랄 사건이었다.
K리그 클래식 무대에서 앙숙 같은 존재인 수원이 핵심 선수를 라이벌 팀에 이적시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이슈가 됐다.
공교롭게도 황선홍 서울 감독은 이상호를 오른쪽 측면 날개로 선발 출전시켰고, 이상호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황 감독은 경기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이상호의 의욕이 너무 앞서고 있어서 냉정하게 경기하라고 주문했다"라며 "선수가 발전하려면 부담감을 이겨내야 한다. 상황을 즐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까지 '환호의 구호'를 보내줬던 수원 서포터스의 야유 속에 경기에 나선 이상호는 의욕만 앞섰을 뿐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는 가운데 전반 9분에는 팀이 선제골까지 내주며 분위기는 급속하게 수원으로 넘어갔다.
전반을 0-1로 마친 서울은 후반 17분 동점골을 터트렸고, 주인공은 이상호였다.
이상호는 문전 혼전 상황에서 윤일록이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슈팅한 볼을 골지역 오른쪽에서 오른발로 볼의 방향을 바꿔 귀중한 동점골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상호는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친정팀에 대한 예우였다.
이상호는 경기가 끝난 뒤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넣어서 기쁜 것보다 득점한 것 자체가 기쁘다"라며 "친정팀이라서 세리머니를 자제했다. 마음속으로만 기뻐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많이 부담스러웠다. 부담이 크면 경기력에 지장을 받을 것 같아서 부담을 떨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라며 "그래서 전반에 부진했다"고 털어놨다.
이상호는 "수원 팬들로부터 당연히 야유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고, 야유가 나왔을 때 이겨내려고 노력했다"라며 "개막전 준비를 충실히 했다. 아파도 참고 훈련했다. 서울 팬들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환호를 해주신 게 감사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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