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금리인상임박] 전세계 돈줄죄기 나서나…ECB·BOJ 등 압박 고조
유로존 물가 2% 찍자 '테이퍼링' 목소리…中 '긴축' 움직임도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다음주에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미국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준이 오는 14~15일 금리를 올리면 미국의 금리 상단은 8년 만에 1%대를 회복하는데다, 앞으로도 트럼프 행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가동과 물가 상승이 맞물리면 금리 정상화 행보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해 수년간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면서 돈을 풀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에 가해지는 돈줄 죄기 압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역시 역내 물가 상승세가 속도를 내고 있는데다, 미국과의 통화정책 차이 및 금리 격차로 시장불안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빚을 내 성장에 골몰하던 중국도 올해 돈줄 죄기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ECB 4년 만에 물가목표치 2% 터치…"양적완화 끝내야" 매파 목소리 커져
미국의 3월 금리인상이 확실시됨에 따라 가장 큰 압박을 받는 곳은 오는 9일 통화정책회의를 여는 ECB다.
이달초 발표된 유로존의 2월 소비자물가는 원자재와 에너지가격 상승에 따라 2% 올랐다. 2%를 찍은 것은 2013년 1월 이후 4년 만이다. 특히 ECB의 물가관리 목표치인 2% 바로 밑을 살짝 넘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유로존 경기도 회복세가 두드러진다. 경제성장률은 작년에 1.7%를 기록해 8년 만에 미국(1.6%)을 추월한 데 이어 올들어 구매자관리지수(PMI) 등 각종 지표도 기준치를 훌쩍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제지표들의 변화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돈줄 죄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압력을 키운다.
ECB는 2015년 3월부터 거의 3년째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1조5천억 유로어치의 국채 등 자산을 사들여 돈을 푸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펴왔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유로존의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재차 경기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하지만 독일과 덴마크를 비롯한 ECB 이사회내 매파(통화긴축 선호)들은 이제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터치한 만큼 ECB가 돈줄죄기에 나설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독일 집권 여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의 랄프 브링크하우스 부의장은 파이낸셜타임스에 "물가상승세 확대는 ECB의 돈풀기 정책에 대한 기반을 박탈한다"면서 "갑작스러운 통화정책 변경은 악영향을 수반하기 때문에 ECB는 이제 완화적 통화정책의 종료를 준비하면서 확실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ECB는 지난해 12월에 이달까지였던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올해 말까지 9개월 연장하되 오는 4월부터는 원래 800억 유로였던 월간 자산매입 규모를 600억 유로로 축소하기로 하면서 양적완화의 축소(테이퍼링)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었다.
미하엘 하이제 알리안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리와 물가상승률 간의 격차가 커서 ECB가 정책목표를 수행하는데 역효과가 나고 있다"면서 "저축을 보유한 사람의 불만을 고조시키고,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ECB가 이번 달에 -0.4%인 예금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CB 이사회 내에서 매파인 독일 몫 자비네 라우텐슐레거 이사와 옌스 바이드만 분데스방크 총재는 ECB가 양적완화 프로그램의 고삐를 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근원물가 상승전환 日·생산자물가 고공행진 中도 '고심'
미국이 금리정상화에 속도를 내면 물가상승세가 본격화하는 일본이나 중국에도 압박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1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0.1% 상승해 작년 12월 이후 1년 1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로 전환했다. 근원물가는 전체 소비자물가에서 가격 변동이 심한 신선식품을 제외한 것을 말한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0.4% 상승해 4개월째 상승세다.
물가 지표는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근거다. 일본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2%이며, 달성 시점은 2018년께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의 물가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중국의 1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6.9% 급등해 2011년 8월(7.3%) 이후 약 5년 반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치솟았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생산자물가가 뛰면 전 세계 물가상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1월 중국의 소비자물가도 2.5% 올라 중국 인민은행의 물가관리 목표치 3.0%에 다가가고 있다.
전 세계의 물가가 치솟는 이유는 구리와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올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산업재, 소비재로 두루 쓰이면서 세계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닥터 코퍼'로 불리는 구리 가격은 작년 10월 저점 이후 최근까지 30%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해 연초까지만 해도 바닥을 기던 원유 가격은 산유국 감산 합의에 따라 배럴당 50달러를 웃돌고 있다.
이런 세계적 물가상승은 14~15일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이어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여는 일본은행(BOJ)에 통화완화정책을 축소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키이치 무라시마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FT에 "올가을이 되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엔화 약세에 일본의 근원물가가 1%까지 상승할 것"이라며 "일본의 실업률도 낮아 임금이 상승하게 되면 이는 물가상승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가 지난 1월 40개 투자은행과 경제분석기관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내년 4월까지인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의 재임 기간 국채매입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은 60%에 달했고, 장기목표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37.5%에 달했다.
일본은행은 작년 1월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췄으며 이후에는 금리를 동결해왔다. 지난 9월 금융정책회의에서는 본원통화가 연간 80조엔 가량 증가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던 통화완화 정책의 축을 장·단기 국채금리 차이(국채 수익률 곡선)로 변경하면서 10년물 국채금리를 0% 수준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도 본격 돈줄 죄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인민은행은 그동안 중단기 자금 대출금리를 매우 낮게 잡아 성장을 견인하는 데 초점을 뒀지만, 올해 들어 공개시장운영 창구인 7일짜리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금리를 2.25%에서 2.35%로, 14일짜리는 2.4%에서 2.5%로 28일짜리는 2.55%에서 2.65%로 2013년 이후 처음 인상했다.
또 시중은행에 단기자금을 빌려주는 단기유동성지원창구(SLF) 대출금리를 한 달 기준 3.6%에서 3.7%로 올리고 중기자금을 빌려주는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대출금리를 1년짜리는 3.0%에서 3.1%로, 6개월짜리는 2.85%에서 2.95%로 잇따라 인상하는 등 긴축으로 돌아서려는 조짐을 보였다.
블룸버그는 지난 17∼23일 주요 투자은행과 경제분석기관 애널리스트 2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들이 예상한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목표치 중간값은 6.5% 내외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경제전문가들은 아울러 중국이 올해 돈줄을 죌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당국이 현금뿐 아니라 예금 잔액 등을 합친 광의통화(M2) 증가량 목표치를 작년 13%에서 올해 11.5%로 하향 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은 5일 전국인민대표자회의 개막식에서 정부업무 보고를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발표한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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