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재판소 "伊정부 가정폭력 대처미흡…피해자에 배상하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남편의 가정 폭력에 아들을 잃고, 자신은 크게 다친 여성에게 이탈리아 정부가 가정 폭력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배상해야 한다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판결이 나왔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ECHR은 2일 결정문에서 "이탈리아 당국은 피해자의 가정 폭력 신고에 신속히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피해 여성 엘리사베타 탈피스(42)에게 소송비 1만 유로를 포함해 총 4만 유로(약 4천900만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ECHR이 만연한 이탈리아의 가정 폭력에 대해 개입한 첫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다.
남편의 만성적인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온 루마니아 국적의 탈피스는 2013년 11월 이탈리아 북부 레만차코에서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가슴을 수 차례 찔린 뒤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사건 당일 그는 남편과 심한 언쟁을 벌인 뒤 경찰에 남편을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환각 상태에 있던 남편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그는 수 시간 후 퇴원한 뒤 다시 집에 돌아와 탈피스를 흉기로 찔렀다. 탈피스는 요행히 생명을 부지했으나, 당시 부모의 싸움을 저지하던 19세의 아들은 아버지의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재판부는 범행을 저지른 남편이 사건 당일 퇴원 후 거리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적발됐으나 경찰이 별다른 조치 없이 그를 집으로 되돌려 보내 비극이 벌어진 점에 주목하며 이탈리아 경찰이 가정 폭력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탈피스가 사건 발생 전에 반복적으로 남편의 가정 폭력을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이 이의 심각성을 과소평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반복적인 가정 폭력을 방조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럽 주요 국가 가운데 남성 우월 정서가 가장 강한 편인 이탈리아에서는 전·현 남자친구나 남편에 의해 크게 다치거나, 잔혹하게 목숨을 잃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이탈리아에서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숫자만 해도 총 120명에 달한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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