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그만 하세요" 지자체도 말려…'찬밥' 신세 된 쌀(종합)
소비량 15년만에 절반 '뚝'…'공급 과잉' 대책은 벼 생산 면적 줄이기
지자체 인센티브 내걸어 작물전환 유도…농민들 "이런 푸대접 처음" 탄식
(청주=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농자 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농업이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으로, 농업을 권장하기 위해 썼던 말이다.
농업이라고 하면 으레 벼농사를 먼저 떠올렸다. 벼농사가 농업의 '대세'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누렇게 물든 황금 들녘을 보면서 흥에 겨운 풍년가를 부르던 호시절은 까마득한 '추억'이 됐다.
갈수록 쌀 소비가 줄어드는 바람에 수확이 늘면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풍년의 역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벼농사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급기야 가격 급락으로 수매한 쌀값을 토해내야 하는 지경이 되자 농민들은 큰 시름에 빠졌다.
'식량 주권'이라며 떠받들던 정부며 지방자치단체마저 생산 면적 줄이기로 정책 방향을 틀면서 벼농사 포기를 심각하게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청주에서 농사를 짓는 김모(65)씨가 그렇다. 그는 요즘 아직 얼어 있는 논을 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올해 계속 벼농사를 계속 지을지, 다른 작물로 갈아타야 할지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평생 천직으로 여기며 벼농사를 지어왔던 데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도 나지 않고, 선뜻 포기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쌀값 폭락으로 정부에 수매하고 받았던 돈의 일부를 다시 반납해야 하는 상황을 곱씹어보면 올해 벼농사에 달려들 의욕이 안 생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손에 쥐는 돈은 없을까 봐 겁이 날 지경이다.
김씨가 지난해 가을 공공비축비를 수매하면서 받은 우선 지급금(1등급 40㎏ 기준)은 재작년(5만2천원)보다 무려 15% 떨어진 4만5천원이다.
그나마도 일부는 정부에 다시 반납해야 할 처지다. 쌀을 수매한 뒤 쌀값이 더 떨어져 최종 매입가격이 4만4천140원으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심란한 김씨는 최근 면(面)사무소로부터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면 기계 구매비 등을 보조해준다는 말을 듣고는 진작부터 고민했던 벼농사를 이제 포기할 때가 된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는 "수십 년간 업으로 생각하고 벼농사를 지었는데, 요즘처럼 쌀이 푸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쌀 생산량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농민을 닦달했던 공무원들이 이제는 쌀농사를 짓지 말라고 권하는 판이니…"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일선 자치단체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쌀 소비량이 급감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벼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990년 119.6㎏였던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2000년 93.6㎏로 줄었고, 2015년에는 62.9㎏까지 떨어졌다. 15년 만에 1인당 쌀 소비량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덩달아 벼 재배 면적도 갈수록 감소세다. 충북만 해도 2011년 4만3천245㏊에서 지난해 3만7천111㏊로 줄었다.
올해도 재배면적을 4.5%가량 줄여 3만5천436㏊만 유지하기로 했다. 2011년과 비교하면 무려 18%가 감소한 것이다.
충북도는 지난해 10월 쌀의 다른 작물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테스크포스(TF)까지 구성해 '쌀 수급 안정을 위한 적정생산 추진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라 쌀을 다른 작물로 전환하면 ㏊ 당 300만원의 영농자재 구입비를 보조한다. 해당 농가는 기계화 장비 사업을 지원하는 우선 지원대상으로 선정하고, 다른 작물의 종자비도 지원한다.
또 일선 시·군이 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오는 8∼10월 다른 작물 재배실적을 종합 평가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충북 농민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국민의 주식인 쌀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쌀 소비가 줄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생산면적 줄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쌀 수입량을 축소하고 소비를 촉진하는 근본적이고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w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