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논란 중심에 선 문명고…팽팽한 줄다리기
"국정과 검정 비교해보자" vs "학생은 마루타 아냐"…외부세력 개입 논란도
(경산=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경북 경산 문명고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 2일 신입생 180여명 중 100여명이 '국정교과서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입학식마저 무산됐다.
◇ '국정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까지
교육부는 지난 1월 31일 중학교 역사,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 최종본을 공개하고 3월 새 학기부터 연구학교가 교과서를 우선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연구학교에 교원 가산점을 부여하고 학교당 1천만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지난달 10일까지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5천개가 넘는 전국 중·고교 중에 단 한 곳도 신청하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대다수가 국정교과서 강행하려는 교육부 방침에 반발했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이에 교육부는 신청 마감일을 지난달 15일로 닷새 더 늦췄고, 경북항공고, 오상고, 문명고 등 경북지역 3개 사립고교가 신청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오상고는 학생 반발로 신청을 철회했고 항공고는 심사에서 탈락하면서 문명고 1곳이 최종 낙점됐다.
◇ 문명고 내부 반발…연구학교 취소 소송도
문명고 재학생과 학부모 등 250여명은 연구학교 지정 심사절차가 진행되던 지난달 17일 학교운동장에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학교가 연구학교 철회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자 이 학교 입학 예정자 2명이 입학을 포기하는 등 논란은 이어졌다. 급기야 2일 입학식에서 신입생 100여명이 피켓을 들고 "국정교과서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입학식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전교조 관계자는 "문명고는 당초 학교운영위원회 표결에서 반대 7표, 찬성 2표로 연구학교 신청 반대가 많았으나 교장이 학부모를 따로 불러 설득한 뒤 다시 표결해 찬성 5표, 반대 4표로 신청안을 통과시켰다"며 "표결이 끝난 사안을 놓고 재투표한 것으로 원천 무효"라고 주장한다.
문명고 한국사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철회 학부모 대책위원회도 같은 근거를 대며 2일 대구지법에 연구학교 지정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확정판결 때까지 교과서 사용 중지 등을 요구하는 효력정지 및 집행정지 신청도 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회의 규정을 어겨가며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를 연 뒤 이를 근거로 재단이사장과 학교장이 일방적으로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를 신청하는 등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학교측이 연구학교에 반대하는 일부 교사의 보직을 해임하고 담임을 배제했다며 인사조치를 철회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측은 "학교운영위원회는 절차대로 진행했고 교사 보직 해임 등은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와 상관없는 일이라 할 말이 없다"며 "(소송이 제기된) 학교운영위원회와 관련해서는 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 "국정과 검정 비교해 보자" vs "학생은 마루타 아냐"
이 학교 김태동 교장은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는 옳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따라와 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처음엔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교과서 내용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 국정과 검정교과서를 비교 연구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대 학부모들은 "학생들은 마루타가 아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학부모 A씨는 "국정교과서를 이성적이고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집필자와 심의위원들이 하면 된다"며 "학생을 시험 대상으로 삼아 제대로 검증 안 된 교과서를 비교 분석한다는 억지를 부리는 것은 학교가 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 외부세력 개입 논란도 불거져
문명고측은 "연구학교 신청 기간에 이른바 '진보단체' 사람들이 신청을 철회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며 "외부세력이 학교 문제에 개입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연구학교 심사 기간인 지난달 중순 진보단체 관계자들이 학교를 찾아 '연구학교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마찰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은 그러나 "사태 초기부터 학부모들은 학생들과 뜻을 함께해 순수하게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외부세력 운운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인 염동열 의원은 3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문명고 사태와 관련, "어제는 입학식마저 무산됐고 교권이 짓밟혔다"며 "7종의 좌편향 교과서를 뿌리내리기 위해 1종의 우편향 교과서를 말살시키는 데 야권과 좌편향 시민단체들이 달려들었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토론회에서 "전교조와 민노총 같은 강경 좌파 단체들이 강제력, 물리력으로 자율적으로 역사교과서를 선택할 상황 자체를 방해하고 저지하는 일이 있었다는 데 참으로 개탄스러움을 금치 못한다"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는 "강경 좌파 세력이 지배하는 나라가 자유 대한민국인지 참으로 개탄스럽고 안타깝다"며 교문위원들을 중심으로 당내에 '올바른 역사교과서 대책 TF(태스크포스)'를 조속한 시일 내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yongm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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