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北리정철 추방 '군사작전' 방불…방탄복 입고 석방·이송

입력 2017-03-03 14:52
수정 2017-03-03 15:28
[르포] 北리정철 추방 '군사작전' 방불…방탄복 입고 석방·이송

무장경찰 호위·교통통제 속 경찰서 출발…출국 항공편 '비공개'

중국 거쳐 평양행 가능성…리정철 말레이시아 가족은 행방 묘연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김정남 살해 혐의로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된 북한 국적 리정철(46)의 석방과 추방 조치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현지 세팡경찰서에 구금된 리정철이 석방된 것은 3일 오전 8시 50분께(현지시간).

그는 방탄조끼를 입은 경찰관들에게 둘러싸여 경찰서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은 리정철에게도 방탄조끼를 입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원 10여 명이 리정철의 주변에 배치됐다.

리정철은 지난 17일 체포된 이후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듯 수염도 깎지 못한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앞을 주시하며 경찰의 호송용 은색 세단에 올라탔다.

그는 말레이시아 이민국으로 가서 최종 추방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리정철 이송은 경찰서에서부터 신속하게 이뤄졌다. 경찰 오토바이 2대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앞장서 이동 경로의 교통을 통제했다. 경찰 특공대용 대형 SUV 1대와 순찰차 2대, 불시 습격을 받을 때 공격을 분산시킬 용도의 호송용 경찰 세단 2대 등 모두 7대의 차량이 동원됐다.

말레이시아 당국과 북한대사관 모두 리정철의 동선을 공개하지 않은 가운데 그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했는지, 몇시에 어떤 비행기를 탈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공항에는 리정철의 추방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보안을 강화한 공항 경찰은 출국장 밖에서도 기자들의 촬영을 금지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리정철은 공항 제1청사를 통해 출국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경로인 중국을 거쳐 평양으로 갈 가능성이 크지만 외부 시선을 피해 제3국을 경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1청사는 김정남이 지난 13일 살해된 제2청사에서 2.5㎞가량 떨어져 있다. 제1청사는 각국의 주요 항공사들이 이용하는 국제선 터미널인 반면 제2청사는 국내선과 저가항공사 전용 터미널로 쓰이고 있다.

김정남은 지난 13일 오전 9시께 제2청사 출국장에서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 베트남 국적의 도안 티 흐엉(25) 등 두 여성 용의자의 독극물 공격을 받고 공항 내 치료소를 거쳐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 숨졌다.



김정남 시신의 부검 결과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VX가 검출됐다. 리정철이 사건 당일 평양으로 도피한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을 도와준 정황이 포착되고 그가 약학, 화학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이번 사건이 북한에 의한 조직적인 범행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리정철이 범행을 부인하고 경찰이 물증은 물론 용의자 신병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하면서 수사가 벽에 부닥쳤다. 결국,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들어 리정철에 대한 기소를 포기하고 추방하기로 했다.

북한으로서는 고위급 대표단을 말레이시아에 급거 보내 요구한 리정철 석방을 관철한 셈이다.

말레이시아에 있던 리정철 가족들의 행방은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정철은 체포 직전까지 쿠알라룸푸르 남쪽 외곽에 있는 한 콘도미니엄에서 40대 아내, 두 자녀와 거주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발급되는 신분증인 'i-Kad'를 가진 리정철은 이웃 주민들에게 일반 가정처럼 보였지만 북한 공작원으로서 위장 가족을 꾸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지 베르나마 통신은 이웃 주민의 말을 빌려 리정철이 자신의 집에서 체포된 지 몇 시간 뒤에 그의 가족들이 황급히 떠났다고 보도했다. 외부 이목을 피해 잠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주민은 "리정철 가족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며 "우리는 이번에 일어난 일(김정남 피살 사건)로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있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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