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갈등 中 보복당한 日, 경제체질 개선 계기…'전화위복'(종합)
日中 '치킨게임'으로 관광중단 등 中 경제제재 "유야무야됐다"
제재때 中, 반일시위→ 일제불매운동→日관광 통제조치로 수위높여
日, 중국 공장 이전 등 '위험분산' 주력…中관광객, 일시감소후 급증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중국이 최근 자국 여행사를 통한 중국인의 한국 관광을 중단시키는 등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보복에 나서면서 2012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를 둘러싼 중일간 분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당시 분쟁의 발단은 중일간 영유권 분쟁이 진행 중인 센카쿠열도에 대해 일본 정부가 국유화를 전격 선언한 것이었다.
일본 정부가 국유화 움직임을 보이자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은 같은 해 9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장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당시 일본 총리를 만나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노다 총리는 이틀 뒤 센카쿠열도에 대한 국유화를 전격 단행했다.
표면적으로는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당시 도쿄도지사가 센카쿠를 매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데 따른 대응이었다.
그러나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대응 혼선 등으로 취약해진 입지를 만회하기 위한 포석도 담긴 것이었다.
이에 중국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민간교류 등 전방위에 걸친 강력한 보복에 나섰다. 중국 국내에서는 반일 시위와 도요타자동차와 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이어졌고, 중국 정부의 일본 관광 통제로 인한 충격도 상당했다.
2012년 9월은 공교롭게도 중일 수교 40주년이 되는 달이었지만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3일 일본정부관광국(JNTO)의 집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일본 관광 제한 조치 이전인 2012년 7, 8월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20만4천270명과 19만25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4.9%, 85.4% 상승했다.
그러나 센카쿠열도 갈등이 발생한 9월에는 12만1천67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8.2% 증가에 그쳤고, 다음 달인 10월과 11월에는 6만9천713명과 5만1천99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3%, 43.6%나 감소했다.
연간 기준으로 2012년 방일 중국인은 142만5천100명이었으나 2013년에는 131만4천437명으로 7.8% 감소했다.
중국 정부의 일본 관광 제한 조치가 곧바로 위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양국간 무역도 영향을 받았다.
일본 재무성 집계에 따르면 2011년 일본의 대중 수출액은 1천620억1천300만달러였지만, 센카쿠 갈등이 첨예해진 2012년에는 1천441만7천400만달러(전년대비 11.0% 감소), 2013년에는 1천290억9천300만달러(10.5% 감소)로 줄었다.
그러나 양국 관계의 경색은 중국의 대일 수출 감소로도 이어졌다.
2011년 1천841억2천900만달러였던 중국의 대일 수출액은 2012년 1천884억5천만달러로 2.4% 증가하는데 그쳤고, 이듬해인 2013년에는 1천808억4천100만달러로 4% 줄었다.
중국의 대일 보복 조치로 일본은 물론 중국도 피해를 본 것이다.
실제 일본 외무성 집계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2만3천94개사(2012년말 기준)에 달하는 만큼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나서면 그만큼 중국내 소비와 고용이 줄어드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센카쿠 분쟁 장기화는 양국 모두에 충격을 주는 치킨게임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양국의 이런 대치는 2년여간 계속됐다.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양국간 갈등 와중에서 일본의 우경화가 심화됐고, 이는 결국 2012년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탄생으로 이어졌다.
중국에서도 이듬해 3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시대가 열렸지만, 오히려 양국간 갈등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서 좀처럼 봉합되지 않았다.
다만 양측 모두 센카쿠 갈등이 안보는 물론 경제 등 전 분야에 영향을 주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 약 2년만인 2014년 9월에야 양국 외교부 부국장급을 대표로 하는 해양협의를 여는 것으로 정부간 대화채널을 재가동했다.
양국은 이후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간 정상회담도 2014년 11월,2015년 4월, 2016년 9월 등 세차례 가졌지만 센카쿠열도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그러나 양측 모두 중일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냈다.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로 인한 무한대치에서 냉각기를 거치고 양 정상이 대화에 나서면서 중국이 내걸었던 제재조치는 유야무야됐다.
양국간 무역 등 경제 의존도가 큰 만큼 제재를 지속하는 것은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런 와중에도 경제의 중국 의존을 낮추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하는 방식으로 향후 유사 사태 재발 시 충격을 줄이는데 주력했다.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에 설립한 공장을 동남아 등지로 분산시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센카쿠 분쟁에 앞서 2010년 발생했던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 충돌 사태에서도 일본은 큰 교훈을 얻었다.
당시 일본은 중국 어선 선장을 억류하는 등 강경대응했다. 그러자 중국은 희토류 수출 중단 등 경제보복과 정치, 민간 교류 중단 카드로 대일 압박에 나섰다.
전자제품 필수 소재인 희토류 대부분을 중국으로부터 공급받던 일본은 결국 선장을 석방하는 등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일본은 희토류 재활용 및 인도·베트남 등지에서 희토류 생산 광산을 개발하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섰다.
아베 총리가 최근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를 거듭 내는 것은 두 차례에 걸쳐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통해 경쟁력이 대폭 강화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교역 등에서 위기로 작용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일본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등 전화위복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중앙은행을 통해 시중 자금 공급을 늘리는 양적완화에 기반한 엔저를 통해 일본 기업의 체력을 키우는 경제정책도 계속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상당히 향상됐다. 또 중일 간 관광 분야 등 민간 분야의 교류는 요즘 최고 전성기를 맞는 분위기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637만3천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센카쿠 갈등 당시 130만~140만명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센카쿠열도 문제 등 정치·안보 분야에 대한 대중 압박과는 별도로 중국인 관광객 비자 발급 요건 완화 등 관광 산업, 특히 중국인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는 일본 정부와 업계의 전략이 주효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관광국은 자체 분석하고 있다.
choina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