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가장 위험한 외교관"…'러시아 게이트' 중심 키슬략 대사(종합)
트럼프 측근, 러 대사 만남으로 '러 내통' 논란…"러 정부 스파이" 의혹도
(모스크바·서울=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김아람 기자 = 냉전 시대부터 미국과 관계를 맺어온 베테랑 외교관인 세르게이 키슬략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가 미국 정가를 흔들고 있다.
키슬략 대사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논란이 한창일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들과 잇따라 만나 미국 정치 스캔들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 키슬략 대사와 만나 대 러시아 제재 해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밝혀져 정권 출범 25일 만에 사임했다. 플린은 역대 최단명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남았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휘해야 할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도 트럼프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대선 기간에 키슬략 대사를 두 차례 만나 대화한 것으로 드러나 위기에 몰렸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키슬략 대사가 트럼프 측근 한 명을 무너뜨리고, 또다른 측근도 위태롭게 만들었다"며 그를 "워싱턴에서 가장 위험한 외교관"이라고 표현했다.
올해 66세인 키슬략 대사는 미국과 구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대치한 냉전 시절부터 러시아 외교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모스크바공학물리연구소를 졸업하고서 소련 대외무역 아카데미를 거쳐 냉전이 절정이었던 1977년 러시아 외무부에 입부했다.
1980년대에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 주재 외교관과 주미 소련 대사관 1등 서기관을 지내며 본격적으로 미국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재 대사와 미주 담당 외무차관 등을 거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8년 주미 대사로 부임했다. 주미 대사로는 이례적으로 지금까지 9년간 대사를 맡아 장수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논란이 불거지자 일부 전·현직 미국 정보 당국자는 키슬략이 러시아의 우두머리 스파이이자 스파이 모집책이라고도 주장했다.
러시아 측은 이러한 의혹을 부인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일급 군사 기밀을 공개하겠다. 외교관들은 일을 하고, 그들의 일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라며 키슬략 대사가 스파이라는 주장을 냉소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그러면서 트럼프 진영 인사들과 러시아 외교관들의 접촉을 매도하는 미국 언론매체들의 보도는 '수치이자 만행'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키슬략 대사는 미국 곳곳에서 열리는 공개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4월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처음으로 외교 정책 연설을 한 자리에 청중으로 참석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키슬략 대사는 인맥 쌓기에 공을 들여 워싱턴에서 가장 두드러진 외교관이 됐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키슬략 대사는 취임 초기 외교 전문가들과 국방부 관리들, 의회 사람이나 기자들을 대사관에 불러 자주 만찬을 대접하곤 했다.
마이클 맥파울 전 주러 미국 대사의 부임을 앞두고는 국방부, 국무부 고위 관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 50명을 백악관 북쪽에 있는 3층짜리 저택에 초청해 호화로운 환송 만찬을 열기도 했다.
맥파울 전 대사는 "키슬략 대사가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고 우리 정부 깊은 곳까지 닿으려 노력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며 "그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에 감명받았지만 그는 항상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공개석상에서 키슬략 대사는 미국과 러시아 관계에 대한 솔직한 해설가였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키슬략 대사는 지난해 11월 "냉전이 오래전에 끝났는데도 우리(러시아와 미국) 관계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대테러 작전, 종교 관용, 기후변화 등 러시아와 미국은 분열보다는 통합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반도 병합에 따른 대러시아 제재 등을 두고는 "우리(러시아)는 여러분(미국) 없이 사는 방법을, 여러분은 우리 없이 사는 방법을 배웠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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