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시각으로 해석한 그리스 문명

입력 2017-03-02 16:10
한국인의 시각으로 해석한 그리스 문명

도올 큰딸 김승중 교수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희랍예술고고학을 가르치는 김승중 교수는 무척 독특한 학문적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와 미국 보스턴에서 자란 그는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프린스턴대 천체물리학과에서 우주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그는 전공을 바꿔 버지니아대에서 예술사를 전공했다. 희랍고고학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컬럼비아대 예술사고고학과에서 고대 그리스의 비주얼 세계에 있어서 시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많은 길을 돌아간 끝에 그리스미술 고고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그리스 문명을 소재로 한 책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통나무 펴냄)을 내놨다.

김 교수가 지난해 월간지에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순간'이란 주제로 연재한 원고들을 바탕으로 내용을 보완했다.

책은 제목처럼 그리스 문명의 미술과 제도, 시간 개념 등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해석하며 오늘날 우리 사회와 연결지어 소개한다.

그리스 시대 세계관에서는 인간보다 신과 영웅이 중심이 됐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이전에는 인간의 역사 대신 신과 영웅을 더욱 중요시했다. 미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미술은 역사적인 개인을 부각하기 보다는 신화적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개인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저자는 이런 그리스미술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희랍 고전 시대에 살았다면 아버지 박정희라는 역사적 개인의 동상을 세우는 대신 박정희를 상징하는 추상적 신화 상징물을 남기려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헤로도토스로부터 시작된 인간 역사의 기록 개념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시간관념 중 하나인 카이로스(kairos)와도 상통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흐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라는 두 가지 시간관념이 있었다. 흐로노스가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주관적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고정적인 시간이 아니라 '때', 그것도 아주 '적절한 때'(right timing)를 의미한다. 흐로노스가 신적인 우주의 영원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인간 세상의 찰나, 현재의 시간을 뜻한다.

카이로스의 모습은 인간으로 치면 앞머리는 길지만, 뒷머리는 대머리를 지닌 모습이다. 처음 만날 때는 확 잡아챌 수 있지만 한 번 지나가면 절대 뒤에서는 붙잡을 수 없는 '기회'와 같다. 카이로스의 순간은 운동선수에게는 승패의 관건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문헌에 등장하는 카이로스는 현상적인 치료의학을 가능하게 하는 주인공이다.

저자는 우리가 숨 쉬는 순간순간이 카이로스의 찰나임을 환기하며 지금 바로 이 시간에 충실한 삶을 살 것을 이야기한다.

이밖에 고대 그리스 희극과 비극에서 오늘날 드라마의 원형을 찾고 리우올림픽을 보며 단순히 신체의 단련이 아닌 미적 이상의 실현을 위한 신체와 정신의 조화를 목적으로 했던 고대 그리스 체육의 역사를 되짚는다.

저자는 도올 김용옥 교수의 큰딸이다.

도올은 책 말미에 실은 '희랍을 말하고 오늘을 말한다'라는 글에서 딸의 글에 대해 "단지 희랍 문명사를 철학사의 좁은 인식의 지평에서 벗어나 총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세의 문명을 어떠한 실존의 지평 위에서 바라보아야 할지에 관한 매우 보편적인 통찰을 가져다주었다"고 격찬했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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