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호세 카레라스 "은퇴는 순리…신이 허락할 때까지 노래"

입력 2017-03-02 15:05
테너 호세 카레라스 "은퇴는 순리…신이 허락할 때까지 노래"

4일 예술의 전당서 47년 음악인생 정리 공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은퇴는 당연한 시간의 순리이지만, 은퇴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우수에 젖게 되네요. 그러나 노래할 수 있었던 지난 47년은 매우 감사하고 축복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은퇴하는 날은 행복한 날이지, 슬픈 날은 아닐 것입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 플라시도 도밍고(76)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불려온 호세 카레라스(71)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는다.

카레라스는 오는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지막 월드 투어-음악과 함께한 인생'을 연다. 그의 47년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세계 투어 공연의 일환이다.

2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카레라스는 "1976년 오페라 '토스카'를 공연하기 위해 한국에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차례 한국 무대에 섰다"며 "그동안 보내줬던 사랑과 성원에 감사드린다"며 한국 관객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날 은빛의 머리카락 색과 어울리는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나온 그는 기자 회견 내내 노신사의 매너와 웃음으로 여유롭게 임했다.

그러나 그는 정확한 마지막 무대나 은퇴 계획 등에 대한 질문에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가며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 생각으로는 이번 월드 투어가 2~3년 정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번 투어가 정확히 언제 끝나게 될진 모르지만 투어가 끝나면 정말로 은퇴를 선언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전에 관객들과 인사를 할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해요. 다만 은퇴를 한다고 해서 절대 다시 공연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프로로서의 무대는 마감하지만, 자선 공연 무대 등에는 꾸준히 오를 계획입니다."

그는 얼마 전 친구 도밍고와 함께한 인터뷰 내용을 일부 인용하기도 했다.

"도밍고가 신께서 노래할 수 있는 정도의 목소리를 남겨주시는 한 계속 노래할 거란 이야기를 인터뷰 중에 하더군요. 정말 멋진 답변이라고 생각했어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난 카레라스는 6세 때 테너 마리오 란자(1921~1959)가 주연한 영화 '위대한 카루소'란 영화에 감명을 받아 성악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의 아마추어 무대를 우연히 구경하게 된 유명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의 눈에 들어 1970년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에서 그녀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것이 그의 정식 데뷔다.

데뷔 이듬해 베르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오페라 극장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데뷔 4년만인 28세 때 24개 오페라의 주역을 맡을 정도였다.

특히 1990년 이탈리아 로마 월드컵을 앞두고 파바로티, 도밍고와 함께 '스리 테너'로 무대에 서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일회성 이벤트로 기획됐던 이 공연은 15년 동안 30번 이뤄졌으며 약 20억명이 공연을 지켜본 것으로 추산된다. 2천300만장의 CD도 팔려나갔다.



최고의 테너로 47년간 세계 무대를 군림해온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아닌, 백혈병을 극복하고 재기 무대에 올랐던 순간을 꼽았다.

그는 "고향 바르셀로나에서 무대를 갖고 백혈병 투병으로 일 년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며 "1년 뒤 다시 고향 무대에 섰던 순간에 느꼈던 그 감격은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7년 느닷없이 찾아온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힘든 투병 생활을 했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기적적인 완치 판정을 받고 지금까지 정력적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그는 이후 자신과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설립한 뒤 적극적으로 재단 관련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은퇴 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도 한결같이 "재단 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 내한공연에서 지금까지 그를 있게 했던 대표곡들을 모아 들려줄 예정이다.

주요 오페라 아리아부터 카탈루냐 민요, 뮤지컬까지 카레라스 인생에 영향을 끼친 곡들로 프로그램이 구성됐다.

그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과 함께했던 곡들, 모국어로 부르는 곡 등 한 곡 한 곡이 모두 내게 큰 영향을 미친 곡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요즘도 연습하느냐는 질문에도 "당연하다"며 웃어 보였다. "테너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게 다뤄줘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어떨 때 연습을 하고, 어떨 때 쉬어야 하는지 판단해 연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는 조지아 출신의 소프라노 살로메 지치아가 함께 한다.

지치아는 "어린 시절 카레라스는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며 "노래를 할 때마다 온 마음을 쏟아붓는 그의 열정을 존경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2014년 내한공연 취소에 대해서도 해명을 했다. 그는 당시 내한공연 둘째 날 공연이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 감기를 이유로 돌연 취소를 결정한 바 있다. 일요일 저녁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던 관객 2천여명은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유감"이라며 "다만 그건 관리를 안 해서라기보다 누구나 살다 보면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공연을 앞둔 컨디션은 전혀 문제가 없다"며 "한국 관객들과 '또' 만날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주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데이비드 히메네스)가 맡는다. 관람료는 6만~28만원.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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