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과 무비자협정 파기한 말레이, 단교조치까지 단행할까(종합)
강철 대사 추방·평양 주재 말레이 대사관 폐쇄 가능성도
김정남 암살 北소행 입증못한 말레이, 공개적 제재 어려울수도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말레이시아가 8년간 유지해온 북한과의 비자면제협정 파기를 선언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의 심장부라고 할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맹독성 화학무기인 VX에 의해 김정남이 사망한 사건을 북한이 주도했다고 결론 내린 말레이시아 당국이 외교적 제재에 착수했으며, 비자면제 협정 파기는 그 첫번째 조치란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일 북한과의 비자면제 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이번 조치는 북한과 8년간 유지해온 무비자 협정을 접는 것으로, 이달 6일부터 정식 발효된다.
다만 말레이시아 당국은 전날 김정남 살해 혐의로 기소된 동남아 출신 여성 2명과 달리 북한 국적 피의자 리정철(46)은 기소하지 않고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말레이시아 정부 사정에 밝은 현지 소식통은 "전날 열린 각료회의에서 비자면제 협정 철회를 비롯해 다양한 조치가 논의되고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한과의 무비자 협정을 통한 경제적 이익이 없다시피 했던 말레이시아와 달리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숨쉴 공간조차 확보하기 힘들었던 북한은 이번 무비자협정 파기로 잃을 것이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북한은 리정철이 증거불충분으로 석방 및 추방됨에 따라 김정남 암살과 관련한 북한 정권 배후설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성과'를 얻은 셈이 됐다.
관건은 북한의 '주권침해성' 범죄에 공분하는 말레이 당국이 비자면제협정 파기에 이어 후속 대북제재 조처를 할 가능성이다.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서는 이미 평양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한 말레이 당국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강철 말레이 주재 북한 대사를 추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 대사는 김정남 암살 사건을 수사해 온 말레이시아 경찰이 한국 정부와 야합해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해 말레이시아 각계에서 거센 비난을 받은 인물이다.
따라서 말레이시아 당국이 이참에 강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인물)'로 찍어 추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대사관에 등록된 외교관 중 실제 외교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대폭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김정남 암살 사건을 막후에서 조율한 혐의를 받는 현광성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도 외무성 소속 외교관이 아닌 보위성 소속 주재관으로 알려졌다.
한술 더 떠 말레이 당국이 자국의 평양 소재 대사관을 폐쇄할 가능성도 작지 않아 보인다.
말레이 당국이 비자면제협정 파기 이후 이런 절차로 대북 제재의 수위를 높인다면, 그 종착역은 '단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말레이 당국은 여전히 조심스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현지 외교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김정남을 암살했다는 심증이 팽배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다"면서 "수사에 획기적 진전이 없는 한 말레이시아가 북한을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직접 지목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북측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숨진 인물이 '김철'이라고 주장해 왔다.
말레이시아 당국으로선 시신의 신원확인이 되지 않은데다, 북한 정권 배후설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도 마땅치 않은 탓에 대북제재의 수위를 높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이날 국영 베르나마 통신을 통해 "국가 안보를 위해 북한과의 비자면제 협정을 파기하며 오는 6일부터 발효한다"고만 밝혔다.
말레이시아 정부 한편에선 비자면제 협정 파기의 파장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무스타파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국제통상산업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의 교역은 민간 섹터에서 주도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통상제재가 가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이달 28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한과의 차기 아시안컵 예선전 경기 참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공문을 말레이시아축구연맹(FAM)에 전달했다.
FAM은 최근까지 안전상 문제를 이유로 경기장소를 제3국으로 옮겨달라고 아시아축구연맹(AFC)측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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