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계획된 동방의 엘도라도 신라…KBS '황금기사의 성'
2년간 8억 투입된 4부작 대기획…3일 밤 1부 '달의 도시' 방송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경주가 1천년 동안 고대 신라의 왕경(王京)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현대 신도시 못지않게 완벽한 도시계획 덕분이었다.
KBS는 당시 '금성'으로 불린 경주의 도시계획과 건설과정을 UHD(초고화질 영상)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4부작 '신라왕경복원프로젝트-황금기사의 성(城)'을 오는 3일부터 방송한다. KBS 그래픽 역량을 총결집해 제작기간 2년, 제작비 총 8억원이 들어간 '대기획'이다.
연출을 맡은 박병용·최필곤 PD는 2일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선 도시건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시도됐지만, 국내에선 인력, 비용 문제로 이제야 제대로 시도됐다"며 "뻔한 신라의 이야기가 아닌 신선한 내용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동쪽 끝 초승달 모양의 성에서 시작한 작은 나라 신라는 어떻게 꽉 찬 황금 보름달이 됐을까.
9∼12세기 아랍인이 꿈꾸는 엘도라도였던 신라. 아랍의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는 "신라에선 금이 너무 흔해 개 사슬도 황금으로 만든다"고 말할 정도였다.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과 더불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천년고도로 번영했던 금성은 당대 최고 수준의 계획도시였다. 그 시작은 4세기 중엽 명활산성으로 피난 갔던 마립간(신라 초기 임금 칭호)과 기사들이 절치부심해 만든 설계도였다.
금성의 방리제(坊里制, 바둑판 모양의 도시계획)를 짠 5대 마립간인 소지 마립간이 사람의 혈관만큼이나 도시 전체로 뻗어 가는 도로망을 만들고자 했던 건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이었다고 한다. 부자(父子)의 약속이 품은 뜻은 무엇이었을까.
오는 3일 방송될 1부 '달의 도시'에서는 소지 마립간과 황금기사단이 평지인 월성으로 향해 1천년을 지속한 '황금도시'를 설계한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외에도 온 백성이 환호했던 신라의 저글링쇼 '금환', 순간 이동 마술 '입호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군악대인 '고취대', 금관 제작 과정을 생생한 영상으로 재현한다. 제작진이 도자기 예술가들과 협업해 5개월간 토우(흙 인형)로 구워낸 개마무사와 병사들은 1부의 백미다.
10일 방송될 2부 '여왕의 술잔'에선 계속된 전쟁으로 수도 턱밑까지 위협당한 시기, 선덕여왕이 금성 곳곳에 100여 개 사찰을 짓고 80여 개 석불을 새기는 과정을 그린다. 고통과 번뇌가 없는 땅 '정토(淨土)'를 꿈꿨던 여왕의 불심 아래 금성은 또 다른 모습으로 확장됐다.
선덕여왕부터 신문왕까지 다섯 명의 왕으로부터 내리 선택받은 신라의 디자이너 양지, 그의 작품 속에 숨겨진 도시의 비밀에 제작진은 주목했다.
제작진은 또 경주 한복판 김유신 장군 묘에서 시작된 직선이 첨성대, 월성, 선덕여왕릉을 지나 대왕암까지 이어지는 점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해석한다.
이 밖에도 당대 최고 규모의 사찰로 지어진 황룡사, 그 중심에서 신라의 역량을 총동원해 건설 중인 9층 목탑의 공사장이 '타임슬립'을 한 듯 재현된다. 목탑은 지금으로 따지면 아파트 28층 높이다.
또 국제도시로 성장한 금성에 외국 상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모습과, 신라인을 홀렸던 아랍 무희들의 현란한 몸짓을 볼 수 있다.
제작진은 "기본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아랍인들의 신라 관련 기록을 참고했지만 경주 발굴 성과가 최근까지도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최신 고고학 기록물까지 모두 반영했다"며 "신라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로드 다큐멘터리 형식의 3·4부는 제작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추후 방송 일정이 안내될 예정이다.
3·10일 밤 10시 각각 1, 2부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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