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국적 리정철 기소냐 추방이냐…말레이, 北배후 규명 갈림길(종합)
김정남 암살 공모 입증여부 관건…현지언론, 증거부족 추방 전망 보도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암살사건 연루 혐의로 체포한 북한국적 용의자인 리정철(47)의 기소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리정철은 경찰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신병을 확보한 유일한 북한국적 용의자로 북한 배후설을 밝히는데 중요한 인물이지만, 범행에 관여한 증거가 크게 드러나지 않아 추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일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에 따르면 김정남 암살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17일 경찰에 체포된 리정철의 구금 기간이 3일 만료됨에 따라, 이날까지 그의 기소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경찰은 그동안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국적의 도안 티 흐엉(29) 등 김정남 암살을 실행한 2명의 외국인 여성을 살인혐의로 기소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지난달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 출국장에서 맹독성 신경작용제 VX를 김정남의 얼굴에 발라 숨지게 하는 과정에서 찍힌 폐쇄회로TV 영상과 김정남의 시신에서 검출된 VX 등이 확실한 증거가 됐다.
그러나 리정철의 경우 범행에 직접 개입한 증거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현재까지 공개된 그의 혐의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범행 당일 평양으로 도주한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을 도와준 것이 전부다.
당시 공항 CCTV에는 달아난 4명의 용의자가 리정철의 차량을 이용하는 장면이 찍혔지만, 리정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량이 사라졌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2명의 외국인 여성 용의자들에게 범행을 지시하거나, 이들이 사용한 VX의 제조 또는 반입에 관여한 의혹을 경찰이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해 입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이런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이미 북한으로 도주한 용의자 4명이 각각 2개조로 나눠 인도네시아의 아이샤와 베트남의 흐엉을 포섭해 말레이시아로 합류시켜 범행했다는 설(說)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가운데 범행에서 리정철의 역할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약학과 화학 전문가인 그는 현지 건강보조식품업체 '톰보 엔터프라이즈 SDN'에서 일하지 않으면서도 서류상으로는 IT부문 직원으로 취업해 이민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난 상태다.
따라서 경찰이 김정남 살해 범행 공모 또는 지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구금 기간 만료와 함께 풀려나거나 이민법 위반으로 추방될 가능성은 있다.
현지언론에서도 그가 기소되지 않고 풀려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영자지 '더 선 데일리'는 2일 자에서 소식통을 인용해 리정철이 '증거부족'으로 석방된 뒤 이민법 위반 혐의로 추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문지 동방일보(東方日報)와 싱가포르의 유력 TV인 채널 뉴스 아시아 등도 그의 추방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신병이 확보됐던 유일한 용의자인 리정철을 석방할 경우 북한 배후설을 밝히는데도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경찰이 이번 사건의 주요 용의자 또는 연루자로 지목한 8명의 북한 국적자 가운데 리지현(33), 홍송학(34), 오종길(55), 리재남(57) 등 4명이 사건 당일 출국해 이미 평양으로 도피했다.
또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44),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 리지우(일명 제임스, 30) 등은 아직 신병확보도 안 된 상태이며, 이 가운데 현광성은 면책특권을 가진 외교관 신분으로 사실상 말레이 당국이 조사할 수 없다.
지난달 25일 말레이 경찰은 외교부를 통해 북한대사관에 현광성 등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 협조를 공식 요청했지만, 북한측은 지금까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할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 경찰청장은 전날 북한대사관이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면서 "끝까지 협조하지 않으면 다음 절차를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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