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관료조직 비협조·저항에 좌절" 아동보호위원 사퇴
성추행 피해자 출신 여성…성직자 성추행에 무관용 천명한 교황청 '머쓱'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교황청이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추행 근절을 위해 조직한 교황청 산하 아동보호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과거 성직자 성추행 피해 여성이 교황청 관료조직의 비협조와 저항에 좌절을 토로하며 사퇴했다.
교황청은 1일 성명을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동보호위원회의 구성원인 마리 콜린스 위원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숀 오맬리 교황청 아동보호위원회 위원장은 "콜린스 위원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낸 사직 편지에서 교황청 관료조직인 쿠리아 내 다른 부서들의 협조 부족에 좌절을 느낀다고 언급했다"고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1960년대에 사제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인 아일랜드 출신의 콜린스 위원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동 성추행을 뿌리뽑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창설한 아동보호위원회의 창립 당시부터 위원회에 몸담아 왔다.
콜린스 위원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황이 아동 보호 증진이라는 취지를 위해 진심을 담아 위원회를 만든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도 "교황이 위원회의 조언과 권고를 모두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추행 조사와 대책 마련에 있어) 끊임없는 차질이 빚어져 왔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편지에서 "이의 직접적인 이유는 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교황청 쿠리아 일부 구성원들의 저항 때문"이라며 "특히 성추행 사건 처리에 가장 깊이 관여하고 있는 교황청 사법 당국의 비협조는 수치스러울 정도"라고 맹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콜린스 위원의 사퇴로 수 십 년에 걸쳐 가톨릭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한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을 전체 가톨릭 교회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단호하게 맞서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교황청은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콜린스에 앞서 영국인 피터 사운더스 위원 역시 일련의 성추행 혐의가 드러난 이탈리아 사제의 처리 문제를 놓고 다른 위원들과 갈등을 빚은 끝에 작년에 위원회를 떠난 바 있다.
사운더스 전 위원은 당시 AFP통신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진실 은폐' 운동에 가담하도록 속아 넘어간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 이후 성직자들의 교회 내 아동 성추행 사실과 이를 오랫동안 은폐해온 교회 내부의 문제가 전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며 가톨릭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자 아동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아동보호위원회를 창설,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럼에도, 아동 성추행 엄단과 근절을 위한 교황청의 노력은 교황청 내 고위 관계자 등 일부 인사의 항명에 부딪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몇몇 성범죄를 저지른 사제들의 처리 과정에서 이들을 파문하고, 형사 처벌을 하는 등 엄단하기 보다는 교회 내 공식 직위에서 배제하거나 근신케 하는 등의 미온적인 조치로 "그가 강조하는 자비의 원칙이 성범죄 사제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가톨릭계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성범죄 성직자들을 파문해 그들을 세상과 직접 접촉하게 하면 신도들이 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들을 교회 테두리 안에서 속죄케 하는 것이 아동 보호에 더 효과적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사퇴한 콜린스 위원은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교회는 성범죄 사제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는 것이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비도 중요하지만 정의도 똑같이 중요하다"며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이 가벼워진다면 이는 가해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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