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독립선언' 낭독한 정재용선생 육성강연 발굴

입력 2017-03-01 09:00
3·1운동 '독립선언' 낭독한 정재용선생 육성강연 발굴

1960년 이화여고에서 강연한 녹취 테이프 발견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이승환 기자 = "우리는 우리 조선이 독립국이고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합니다!"

98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사람은 '민족대표 33인'이 아니었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애초 약속장소였던 탑골공원(파고다공원)에 나타나지 않아 군중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독립선언서를 읽은 것은 감리교 전도사였던 독립운동가 정재용(1886∼1976) 선생이었다.

정 선생이 팔각정 단상에서 선언서를 낭독하자 군중들이 저마다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가장 직접적으로 3·1 만세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정 선생이 해방 이후 1950년대에 3·1 운동과 그 과정에 관해 설명한 육성강연 녹취가 새롭게 발굴됐다.

정 선생의 손자인 정성화(63) 보스톤치과 대표원장(전 새누리당 부대변인)은 1일 연합뉴스와 만나 정 선생이 1960년대 이화여고에서 3·1 운동에 대해 강연한 녹취 테이프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약 30분 분량인 이 강연 테이프에는 정 선생이 33인 중 1명인 박희도 당시 조선기독교중앙청년회(YMCA) 간사로부터 편지를 받고 역시 33인 중 1명인 최성모 목사와 함께 상경해 3·1 운동에 대해 논의한 이야기를 담았다.

정 선생은 이 강연에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다. 약한 민족도 자기 미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 이제는 우리도 (독립할) 기회가 돌아온다고 하는 생각에 가슴이 끓어올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고종 인산(因山·황제의 장례)이 3월 3일이다. 지방에서 많은 사람이 올라올 때다. 그 시기를 이용해 우리가 독립 선언을 해보자고 한 것"이라며 3·1 운동 계획을 논의했던 과정을 설명했다.

3·1 운동 당일 만세를 부르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은 음질이 좋지 않아 잘 들리지 않지만 당시를 재연하듯 "조선 독립 만세!"라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생생히 기록됐다.

정 원장은 이 녹음테이프가 다른 짐에 파묻혀 있다가 막냇동생이 이사하면서 짐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할아버지께서 33세에 낭독을 한 뒤 2년여간 옥고를 치르고 고문도 당했지만, 일제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며 "일본 경찰이 물을 뿌려 깨우면 '내가 살아있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혹독한 고문이었지만, 다행히 고문 후유증은 없어 건강하셨다"고 회상했다.

정 선생은 2년6개월 동안 평양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나서 구국운동을 목표로 한 '의용단' 활동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정부는 정 선생이 사망한 직후 1977년에 건국포장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정 선생의 경신고 후배인 이성언(80) 한국능력개발원 회장은 "나도 고3 때 학생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정 선생을 학교에 모셔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며 "아쉽게도 녹취는 없지만 그 분의 독립에 대한 열정은 생생히 기억난다"고 말했다.



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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