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얼룩진 박근혜표 무역투자회의, 초라하게 막 내리나
박정희 '수출진흥확대회의'가 모태…박근혜 정부 들어 본격 부활
대통령 직접 주재해왔으나 직무정지로 불참…마지막 회의 될 듯
지난 42개 과제 중 20개 첫 삽도 못 떠…최순실 개입 의혹 '오점'까지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김수현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투자 활성화 기치를 내걸고 2013년 취임과 동시에 야심 차게 시작한 무역투자진흥회의가 결국 초라하게 막을 내릴 처지에 놓였다.
지금까지 쏟아낸 대책의 성과도 뚜렷하지 않은데다 무역투자진흥회의의 정책 선정·추진 과정에서 최순실 등 비선실세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 무역투자회의 모태는 박정희 '수출진흥확대회의'
정부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1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고 지역경제 활성화, 고령사회 유망산업 육성 등을 골자로 하는 투자 활성화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주재했지만, 대통령 직무 정지로 이날 회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렸다.
무역투자진흥회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무총리 주재 수출진흥위원회를 대통령 주재로 격상해 1965년 10월 처음 개최한 수출진흥확대회의가 모태다.
수출진흥확대회의는 1980년까지 모두 151차례나 열렸고 박 전 대통령은 다섯 번을 빼고 전부 자신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수출진흥 업무를 챙겼다.
거의 매달 개최된 수출진흥확대회의가 수출정책의 사령탑 역할을 한 덕분에 우리나라 수출은 1965년 1억달러에서 1977년 100억달러로 불과 10여년 만에 기적적인 100배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약화하면서 주기가 길어지는 등 부정기 회의로 위상이 낮아졌다.
한동안 중단된 회의는 1998년 외환위기로 부활했지만 이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무역진흥확대회의' 형식으로 3차례 열렸고 그나마 2004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무역투자회의는 불과 13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 박근혜 정부 들어 부활한 무역투자회의…성과는 '흐릿'
관심에서 멀어지던 무역투자진흥회의는 박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 대통령은 무역투자회의를 매분기 개최하겠다고 강조할 만큼 이 회의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제외하고 나머지 10회에 걸친 회의를 모두 직접 주재하며 챙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무역투자회의가 수출 중심이었다면 박 대통령은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한 투자 활성화가 핵심이었다.
정부는 10차례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총 943건의 분야별 제도 개선 과제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중 644개 과제의 추진이 완료됐고 216개는 정상 추진 중이며 83개 과제만이 법률안 국회 계류, 이해관계자 간 이견 등으로 지연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정부의 투자 지원으로 벤처 기업 수가 3만개를 돌파하는 등 제2의 벤처·창업붐이 조성됐으며 의료·관광 등 유망서비스 관련 제도 개선으로 서비스 산업의 고용·부가가치 비중이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평가가 지나친 자화자찬이라는 지적도 있다.
제2의 벤처·창업붐이 조성됐다는 정부의 설명이 무색할 만큼 청년 일자리 사정은 최악 수준이다. 서비스 산업의 고용·부가가치 비중이 커진 것은 수출 부진, 제조업 경기 악화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 4년여간 규제 완화 등 전방위적 지원으로 완공을 추진하겠다고 한 42개 프로젝트 과제 중 절반에 가까운 20개 과제는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준공까지 한 과제는 새만금 산단 열병합발전소 건설, 서산특구 자동차연구시설 등 5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5건 중 투자규모가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1건에 불과하고 5건의 투자 규모를 다 합해도 3조8천200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총 42개 프로젝트 과제 투자규모(62조원)의 6%에 불과한 수준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착공하지 못한 과제 중 일부는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일정이 미뤄진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애초부터 올해나 내년 착공 예정이었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 사그라지지 않는 '비선실세 개입' 의혹…황교안 권한대행, 회의 강행 '논란'
회의 안건 중 상당수가 규제 완화에 맞춰진 탓에 각종 특혜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2월 17일에 개최된 제9차 회의 당시 신산업 투자 규제 완화 안건 중 신약개발을 위한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 대상 확대,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요건 완화 등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완화는 차병원그룹 사업과 관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차병원그룹은 최순실 씨 자매가 박 대통령의 주사제 대리 처방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오는 차움 병원의 모그룹이다.
당시 회의는 경제수석이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안건을 조율했다.
차은택 씨 개입 의혹이 제기된 K-컬처 밸리 조성 지원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때였다.
지난해 7월 개최한 10차 회의에서는 이슬람교도가 사용하는 제품인 할랄 지원방안을 내놔 뜬금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차은택 씨가 중동 방문 이후 할랄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며 정부의 할랄 산업 육성책 역시 비선 실세에 의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로 인해 회의의 위상이 훼손된 가운데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지난해 말께 열릴 예정이었던 11차 회의는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번 회의가 강행되자 논란이 일었다.
권한대행 신분으로 장·차관이 대거 배석하는 경제 관련 회의를 연 것을 놓고 황 권한대행이 차기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경제 현안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황 권한대행은 쪽방촌, 전통시장, 육군훈련소 등을 방문하며 민생 행보를 거듭하고 있고 최근에는 규제 관련 대국민 토론회 주재, 권한대행 직함이 새겨진 기념 손목시계 제작 등 존재감을 알리면서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현장대기 프로젝트 과제를 선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거나 투명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본다"라면서도 "다만 프로젝트 발굴 시기·방식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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