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시아와 내통설' 수사에 외압 넣었나
(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과 러시아가 내통했다는 의혹의 파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
트럼프 진영이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심으로 인해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경질된 데 이어 이번에는 백악관이 이 내통설을 조사 중인 연방수사국(FBI)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백악관은 트럼프 측근들과 러시아의 내통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를 FBI를 내세워 반박하려다 거절당했다는 CNN방송의 지난 23일(현지시간) 보도를 강하게 부인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CNN 보도는 여지없는 "오보"라고 주장했다.
CNN은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제임스 코미 FBI 국장, 앤드루 매케이브 FBI 부국장에게 뉴욕타임스(NYT) 등 언론의 보도 내용을 FBI가 나서 공개적으로 반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었다.
문제가 된 기사는 NYT가 지난 14일 보도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기간 캠프 관계자들과 다른 측근들이 러시아 정보당국 고위 관계자 등과 지속해서 접촉했다는 내용이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CNN 보도가 오보라고 주장하면서도 프리버스 비서실장이 FBI의 코미 국장, 매케이브 부국장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백악관 고위급이 현재 수사 진행 중인 현안과 관련해 FBI 당국자들과 협의한 것은 법무부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백악관의 고위 정무직들이 FBI의 최고 책임자와 부책임자를 접촉한 것은 조사 내용과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는 데다 수사에 대한 외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에 대해서는 FBI와 미 의회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가디언과 FT 보도를 종합하면 NYT 보도 다음 날인 15일 아침 프리버스 실장은 백악관에서 회의한 뒤 매케이브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큰일 났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이에 매케이브 부국장은 NYT 보도는 정확지 않다고 말했고, 다만 "FBI가 공개적으로 할 말은 없다"는 답변을 했다.
프리버스 실장은 그러면 FBI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언론 보도가 오보라고 발표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매케이브 부국장은 코미 국장이 프리버스 실장에게 다시 전화해 이에 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알리 수판 전 FBI 특별요원은 "백악관이 법무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며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규정 위반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마이클 저먼 전 FBI 요원도 "FBI 직원이 수사 중인 사안의 정보를 빼내 당사자나 관련 증인과 공유하는 것"은 증거를 무력화하거나 조사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론 와이든 상원 의원(민주당 오리건 주)은 "FBI 수사 내용에 관해 백악관 비서실장이 정치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민주주의 훼손"이라며 "프리버스의 주장대로 백악관이 FBI와 논의하고, 발표 사항을 조율했다면 조사의 공정을 의심할 합당한 이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내통설이 언론에 보도된 데 이어 FBI와 프리버스 실장의 통화 내용까지 공개되자 24일 FBI가 기밀 누설을 막지 못하고 있다며 트위터를 통해 비난했다.
그는 FBI가 국가 기밀 유출 방지에 "완전히 무능"할 뿐 아니라 "FBI 내부로부터 진행되는 유출"도 막지 못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백악관이 FBI 수사에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내통설 파문을 또다시 정보 유출 문제로 몰아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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