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영화 제작자가 필요해"…김정일이 연출한 황당 납치극
신상옥·최은희 납북 사건 다룬 신간 '김정일 프로덕션'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김정일이 아버지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는 국제적 성과를 낼 필요가 있었다. 엄청난 자본, 불굴의 야망을 보유한 그에게 부족한 것이라고는 영화 제작에 관한 경험과 재능뿐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1977년, 곰곰이 고심하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시 북한 노동당 정치위원회 위원이던 '영화광' 김정일은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과 배우가 필요했다. 그가 원한 인물은 196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은 신상옥(1926∼2006) 감독과 여배우 최은희(91) 씨였다.
1953년 결혼한 신 감독과 최씨는 1961년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 '성춘향'의 감독과 주연배우를 맡았다. 그러나 신 감독은 1975년 홍콩에서 개최한 영화 '장미와 들개' 시사회에서 3초짜리 키스 신을 삭제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면서 몰락했고, 이듬해 불륜 사실이 불거져 최씨와 이혼했다.
그러다 이들은 1978년 홍콩에서 잇달아 자취를 감췄다. 최씨가 1월에 먼저 사라졌고, 전 부인을 찾고 있던 신 감독도 7월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두 사람이 납치된 곳은 북한. 이들에겐 김정일이 이미지 정치를 하는 데 사용할 영화를 제작하라는 임무가 맡겨졌다.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 겸 제작자인 폴 피셔가 쓴 '김정일 프로덕션'(한울엠플러스 펴냄)은 김정일이 연출한 신상옥·최은희 부부 납치 사건의 전말을 소설처럼 풀어쓴 책이다. 2015년 미국과 영국에서 출판됐고, 국내 출간에 앞서 14개 언어로 번역됐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신 감독과 최씨의 회고록을 비롯해 신문기사, 논문을 살폈다. 또 이 부부와 관련이 있거나 1970∼1980년대 북한에 체류했던 사람 약 50명을 만났고, 북한도 직접 다녀왔다.
신 감독과 최씨가 북한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1983년 재회한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밀사', '사랑 사랑 내 사랑'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김정일이 직접 제작자로 나선 1985년작 '소금'으로 최씨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신 감독은 그해 괴수영화인 '불가사리'를 만들었다.
북한에서 체제 선전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하수인으로 전락한 두 사람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뛰어들어 망명에 성공했고, 미국에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저자는 신 감독 부부가 자진해서 월북했다거나 북한이 부부를 일부러 풀어줬다는 일각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두 사람이 납북됐고, 이후 극적으로 탈출했다는 것이 정황상 명백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1970년대까지 북한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김정일이란 인물을 조명한다. 김정일은 할리우드 첩보물, 로맨틱 영화, 심지어 포르노까지 종류를 불문하고 다양한 영화를 수집해 감상했다.
저자는 "김정일이 쇼맨십을 활용하는 법,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 등에는 어느 정도의 재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가 북한에 새로 도입한 정책과 그로 인한 업적은 바로 영화를 보고 배운 것들이었다"고 분석한다.
한편 책에는 지난 1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피살된 김정남과 최씨에 얽힌 일화도 소개돼 있다.
김정남이 최씨를 만난 건 어렸을 때다. 그때까지 자기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던 일곱 살의 정남은 최씨에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일러줬다고 묘사돼 있다.
제 엘리자베스 옮김. 472쪽. 2만5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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