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부터 이윤택까지…한국 현대희곡 100년사
신간 '한국 현대희곡선'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춘원 이광수가 일본 유학생 잡지 '학지광'에 '규한'을 발표하며 한국 현대희곡의 시작을 알린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됐다. 한 세기 한국 희곡의 흐름을 일별할 수 있는 선집이 나왔다.
신간 '한국 현대희곡선'(문학과지성사)에는 궁핍한 시대를 반영한 1930년대 사실주의극부터 놀이와 신명을 강조하는 1990년대 작품까지 희곡 10편이 실렸다. 이상우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20세기 연극의 경향은 물론 각 시기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선별했다.
"명수야, 내 자식아! 이 토막에서 자란 너는 백골이나마 우리를 찾아왔다. 인제는 나는 너를 기다려서 애태울 것두 없구 동지섣달 기나긴 밤을 울어 새우지 않아두 좋다!"
유치진의 '토막'(1932)에서 기다리던 아들의 백골을 주워든 어미의 비애는 민족의 비극과 맞닿는다. 유치진과 함세덕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궁핍하고 피폐한 민중의 삶을 그렸다. 오영진의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1949), 차범석의 '불모지'(1957)는 해방 이후 사회를 비판·풍자한 작품이었다.
1960년대 이후 연극은 부조리극·서사극·전위극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사실주의극에서 점차 벗어났다. 이근삼은 '국물 있사옵니다'(1966)에서 주인공이 등장인물을 소개하거나 내면을 토로하는 혁신적 서사극을 선보였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1970년대 들어 소설 창작을 잠정 중단하고 전통 설화를 소재로 한 희곡에 몰두했다. 최인훈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1976)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영웅인 아기장수가 민중을 상징하는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담았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경향은 20세기 말까지 이어지지만 비극성의 자리는 놀이와 신명이 차지한다. "어차피 깜깜 세상, 인간들은 구천 생각으로 하릴없이 슬퍼하지 말고, 여기 산 목숨이 바쳐 올리는 사바세계 한판 놀이극을 즐기면서, 마음 턱 놓고 저승길로 가자스라!" 이윤택의 '오구-죽음의 형식'(1989)에서 문상객들이 고스톱을 치는 장면이다. 작가는 노모의 죽음과 장례의식이라는 비극적 소재를 희화화해 놀이의 현장으로 만든다.
선집에는 심청전 패러디로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오태석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1990)도 실렸다. 이 교수는 "오태석과 이윤택의 연극에 매료된 고정 마니아 관객층이 꾸준히 존재하는 것은 이들의 연극세계가 갖고 있는 축제성과 광대정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636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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