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국민 46만명] ③기초연금도 못받아…구멍난 복지 그물망
대부분 연금혜택 몰라 "대상이면 받고싶다" 84%…일부 '부정수급'도
65세 이상 거주불명자 8만2천여명…쌓인 노령연금 미지급금만 810억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 부부는 100세가 넘은 고령자이자 거주불명자다.
지난해 8월,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등록 사실 조사 과정에서 A씨 부부가 주민등록상의 주소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차로 통장, 2차로 주민센터가 A씨 부부의 집을 방문했으나 이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단지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분들로 안다"는 주민 증언을 종합해 A씨 부부가 사망했으리라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A씨 부부에 대해 들어온 사망신고는 없다.
A씨 부부의 가족들조차 연락받기를 꺼리자, 주민센터는 A씨 부부를 거주불명자로 등록했다.
이후 행적 조사와 같은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한계가 많다는 게 이유다.
문제는 A씨 부부처럼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고령의 거주불명자들에 대한 기초연금 등 사회보장급여 지급이 중지된다는 점이다.
고령의 나이를 감안하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만에 하나 살아있다면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거주불명자에 대한 사회보장 서비스 제공이 미흡하다는 지적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됐다.
감사원은 2013년 4월, '고령사회 대비 노인복지시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다.
감사 결과 거주불명등록제 시행 후인 2010년 1월부터 2012년 8월까지 거주불명 등의 사유로 사회보장급여가 중지된 사람이 2천29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2년 8월 말 기준, 거주불명자 49만3천224명 중 3만3천738명이 건강보험에 가입된 것을 확인했으나 이 중 1.4%(473명)만이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 등 사회보장급여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자료에서 "거주불명자 가운데 기초노령연금 수급 대상인데도 연금을 받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임의 선정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 32명 중 20명(62.5%)은 제도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며 "제도 설명 후 신청 의사 확인 결과 84.4%(27명)가 신청을 희망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건강보험에 재가입한 거주불명자를 대상으로 사회보장급여 신청을 안내하는 등 방안을 마련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기점으로 1년에 한 차례씩 국민연금공단과 함께 거주불명자 전수조사를 벌이기 시작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지난해 전수조사를 벌인 3개월 동안 실제로 찾아내 기초연금을 지급한 거주불명자는 600여 명에 그쳤다.
같은 기간 기초연금 수급대상인 65세 이상 거주불명자가 8만2천여 명인 점을 고려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노령연금 수급요건을 충족했는데도 청구하지 않아 그냥 쌓여 있는 미지급금은 810억에 이른다.
노령연금 이외에 유족연금·사망일시금 미지급금도 120억원이다.
연금공단은 홈페이지에 '못 받은 국민연금 찾아가세요'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명절을 앞두고는 관할 지자체와 합동으로 홍보활동도 벌인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찾아갔는지는 최신 통계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목희 의원실 국감자료에 따르면 2012년 6월 기준 65세 이상 거주불명자 7만8천642명 중 실제 기초노령연금 수혜자는 186명(0.2%)에 이른다.
그 반대로 사망 신고 지연에 따른 기초연금 등의 부적정 지급 사례는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바른정당 홍철호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에게 지급된 기초연금은 2013년 2억8천여 만원(2천54명), 2014년 2억여원(1천263명), 2015년 2억1천여 만원(1천4명) 등이다.
이 기간 소득·재산 초과자, 재소자 등에게 지급한 액수까지 합치면 부적정 지급액은 70억원을 넘는다.
2004년 1월 어머니 사망 사실을 숨기고 11년간 전몰군경 유족 보훈급여 1억6천만원을 부당 수령했다가 적발된 이모(70)씨가 최근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징역 1년 2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은 각종 복지 수당과 지원금의 경우 신청해야 지급하는 '신청주의' 행정이어서 대량 누수는 사전에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각 지자체에서 확보한 거주불명자 명단을 이용해 조사를 벌이다 보니 한계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모집단 자체가 거주불명자이다 보니 접촉 자체가 어렵고, 연락이 닿아도 가족문제, 채무관계와 같은 개인 사정으로 자신을 드러내길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사망이나 해외 이주 등 행정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거주불명자로 등록된 이들은 찾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박유성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는 "거주불명자 조사(주민등록 사실조사)는 통장이 각 집에 방문해 '○○씨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식으로 진행된다"며 "'네'라고 답하면 끝나는 것인데, 이런 방식은 진정한 의미의 전수조사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통계로 잡힌 거주불명자 수치는 부정확하다. 면밀한 조사로 통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며 "이대로 가면 거주불명자가 복지 사각지대에 빠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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