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반란?…코닥 필름·LP·노키아 휴대전화 등 부활

입력 2017-02-26 08:10
디지털 시대의 반란?…코닥 필름·LP·노키아 휴대전화 등 부활

가전기술은 이제 패션이나 문화 일부로 변모

복고 붐 속 디지털의 한계를 아날로그가 보완한다는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첨단 기술의 시대에 회고적 복고기술 붐이 일고 있다. 옛 기억을 되살리는 짙은 향수 때문일까? 아니면 첨단 기술이 갖지 못한 또 다른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3일 세계 가전 시장에서 일고 있는 복고 붐을 조명했다.

현대인들의 생활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은 기술적 측면에서 과거 우주비행사들을 달에 착륙시킨 기술보다 몇 배나 강력하다. 또 과거에는 일반인들은 감히 근접할 수 없었던 기술들도 이제는 일상적인 접근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패션이나 문화 사조도 수년간의 주기를 거치면서 갈수록 세련되고 있으며 기업들은 직전에 개발된 축적된 기술들을 바탕으로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이며 값싼 제품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기술이 넘치는 상황에서 지난 2년 사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음악산업 분야에서는 옛 아날로그 시대를 상징하는 12인치(30cm) 비닐 레코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포맷이 되고 있으며 파산 신청 끝에 뿔뿔이 흩어진 코닥사는 엑타크롬 슬라이드 필름을 다시 생산하고 있다.

또 핀란드의 노키아사는 스마트폰 이전 피처폰 시대의 상징이었던 3310 모델 재생산에 착수했다. 피처폰 시대 세계 휴대전화시장을 석권했던 왕년의 명기를 다시금 시장에 내놓고 있다.

기술이나 포맷 면에서 월등한 스마트폰과 겨루겠다는 야심적인 구상이다. 분명한 것은 애플은 3310과 같은 고전 휴대전화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닌텐도가 역시 구형 게임기 콘솔(NES)의 클래식 에디션을 다시 발매해 팬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였다.

아날로그 필름의 대명사였던 코닥은 디지털 물결에 밀려 지난 2012년 마지막까지 버티던 필름 산업을 접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5년 만에 다시 필름 생산에 착수해 전 세계 아날로그 필름 팬들의 환호를 자아내고 있다.

압도적인 디지털의 물결 속에서도 아날로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유명 가수들은 최근 들어 신곡 출반 시 콤팩트디스크(CD) 뿐 아니라 LP 레코드도 함께 발매한다. CD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호응도가 높다. LP 컬렉션도 되살아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전화기와 MP3 재생기, 카메라, 게임콘솔 등이 대체로 분리된 상태였으나 지금은 1~2개로 압축된 상황이다. 상황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코닥과 닌텐도는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폰으로 인해 이들 업체의 고유 시장이 사실상 소멸하고 만 것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애들 장난감 수준에 불과한 옛 기술 제품들이 다시금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과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텔레그래프는 우선 옛 시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향수 마케팅을 주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한다. 특히 기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현대 생활에서 가전제품은 이제 단순히 기술적 장비이기보다 하나의 생활 패션이자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실상 스마트폰에 묶여버린 생활 패턴에 대한 피로도가 가중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휴대용 전자제품이 1980년대 주류였고 1990년대 들어 그 절정기를 맞은 만큼 밀레니엄 세대들은 대부분 이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도 첫 휴대전화로 가졌던 노키아 3310의 기억은 갖고 있다.

한편으로 회고적 기술산업은 대체로 소규모 업체들이 관여하는 틈새시장인 만큼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점도 지적되고 있다. 경쟁업체가 많지 않은 탓이다.

온라인을 통해 관심을 가진 다수로부터 이른바 풀뿌리 펀딩이 용이하고, 대부분 장년층인 소비자층을 상대로 고객 확보도 용이한 점 등이 회고적 기술산업 붐의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회고적 기술 제품들의 수요층이 아직은 제한적인 만큼 그 장래에 대해서는 덜 낙관적이다. 회고기술 붐이 인다고 해서 과거 워크맨이나 구형 전화기까지 부활할 것으로는 예상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기술이 문화나 정치와는 달리 이전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근의 복고 붐이 단순히 옛 기억을 반추하는 향수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오히려 디지털의 한계를 아날로그가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직도 아날로그 필름 인화를 통한 사진의 화질이 첨단 디카의 그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깊은 인상을 안겨준다고 필름 팬들은 주장한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CD나 MP3 등 디지털 음은 쉽게 피로해지는 반면 옛 비닐 레코드 녹음은 훨씬 자연스럽고 디지털이 갖지 못한 여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귀와 눈이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논리이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반항으로 일고 있는 아날로그 붐이 다른 분야로 확산할지 아니면 일시적 제한적 돌풍에 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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